[신간]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순간…제헌헌법 20일간의 기록

입력 2024-07-24 13:09:13

헌법의 순간
대한민국을 설계한 20일의 역사
박혁 지음·페이퍼로드·1만9000원

헌법의 순간. 페이퍼로드 제공
헌법의 순간. 페이퍼로드 제공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1대 국회의원 198명이 당선된다. 제헌 의원들의 첫 임무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만들고, 그 헌법을 토대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일이었다. 제헌의원들은 1948년 6월 23일부터 7월 12일까지 20일간 헌법안 10장 103개 조항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이 기간 국회 본회의장에 헌법 초안이 상정돼 헌법안이 통과된다. 그리고 7월 17일에 정식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공표됐다. '헌법의 순간'은 대한민국 헌법 제정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저자는 제헌 국회가 독립운동의 역사를 헌법에 담기 위해 애쓴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결정된 과정부터 설명한다.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통합된 한국을 염원한 '대한'이란 이름을 말소하고 망국을 상징하는 '조선'을 부활시켰다. 1919년 3월 1일 온 국민은 일본이 자행한 '대한 말살'에 저항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대한민국'이란 국호에는 자주독립정신과 항일정신으로 성립된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국토를 부르는 명칭인 '한반도' 역시 빼앗겼다 되찾은 말로 헌법에 담겼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보편적인 기본권 문제 대부분이 제헌 헌법 제정 순간부터 논의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법이 국가와 국가 구성원 간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국민'이라 생각했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몇몇 제헌 의원들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헌법의 주체를 '인민'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어는 북한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제헌국회가 인권에 얼마나 민감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여성의 권리를 확충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당시 만연했던 축첩(첩을 둘 수 있는 관행)의 폐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을 설명한다. 여성참정권이 도입되고 여성 후보도 출마했지만 막상 제헌국회는 남성이 모두 입성했다. 고위공직자 마저도 축첩하고 아내를 억압하는 상황에서 헌법초안에 없던 제헌헌법 제20조가 신설된 것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저자는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받았던 차별을 없애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고자 노력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저자는 이 밖에도 무상 의무교육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당대 정치인들의 의지까지 보여준다. 나라 살림이 어려웠던 당시에는 초등교육만 무상 의무교육으로 보장한다는 조항만 있었다. 이 떄문에 초등교육까지만 이수한 아동들은 노동도 할 수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헌 의원들은 조항 안에 '적어도'라는 세 글자를 넣어 후대에 무상 의무교육의 범위를 넓힐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책 속에는 헌법 초안을 번복해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한국식 대통령제가 탄생하는 아쉬운 '헌법의 순간'도 함께 담겨 있다. 사실 미국과 유럽을 모델로 한 양원제와 의원내각제를 지향했던 대다수 제헌 의원들은 대통령제에서는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책임을 물을 마땅한 방도가 없고, 정부와 국회가 대립하는 국면을 해소할 방도가 없었던 점을 고심했다. 이에 의원내각제를 기초에 둔 헌법이 설계됐다. 하지만 '사회안정과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하다'는 정세론에 밀려 대통령제가 채택된다.

이 책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방향성을 다시 일깨울 수 있다고 말한다. 1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