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창] 오물 풍선과 대북전단금지법

입력 2024-07-11 14:17:14

이종철(전 고려대학교 외래교수)
이종철(전 고려대학교 외래교수)

북한이 '오물 풍선'이라는 걸 날려 역겹고 징그러운 쓰레기들을 한국에 떨어트렸다. 공중에서 낙하하는 무거운 오물들이라 세워진 차 앞 유리를 완전히 파손하였다. 만약에 길을 가던 행인의 머리 위로 부딪혔다면 어쩔 뻔 했는가. 한 번에 수백 개씩 일곱 차례 도발이 이어졌다.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국가라면 상상조차 어려운 발상이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든 아랑곳 않는 북한이니까 가능한 행동이다. 대북전단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은 정권의 독재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선전물이다. 북한에서 온 탈북자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민간단체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북한은 모든 것이 통제된 나라이다. 방송이고 통신이고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독재정권인지도 판단할 수 없다. 일종의 봉건시대의 왕으로서 성군이라고 하면 그런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으며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김정은은 북한 주민을 억압하는 독재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주민들로서는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독재자에게 이만큼 위협적인 것은 없다. 권위주의 독재체제가 국민들의 각성과 민주화 요구로 무너진 과정이 다 이랬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의 위협을 없애주느라고 대북전단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2020년 6월 4일 김여정의 협박성 담화가 나온지 4시간 만에 통일부는 대북전단을 막을 법률 정비 계획을 발표했다. 6월 16일 북한은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7월 17일 통일부는 대북전단을 살포한 민간단체 2곳에 대해 법인 설립 취소 결정을 내렸다. 국회에서의 법안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2월 14일 민주당 독단으로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정확히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개정안'이다.

대북전단금지법은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불렸다. 미국의 유명한 북한인권운동가 수잔 숄티는 "한국의 여당 국회의원들이 독재자의 여동생에 따라 행보를 결정했다"며 "매우 충격적이다" 라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일찌감치 이런 생각을 했다. 문 전 대통령이 취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17년 7월 4일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1차 시험 발사를 실시했다. 이때 문재인 대통령이 한 지시가 "대북전단을 막을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위헌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김여정 하명법'을 만들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을 위배하는 사태를 빚었지만 민주당이든 문재인 전 대통령이든 일언반구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에서 오물 풍선이 날아오자 당시 이재명 대표는 북한의 오물 풍선보다 우리 측의 대북전단이 더 문제라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대북전단금지법을 또 추진하겠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은 어떤 인식을 가져야 할까? 대부분 북한이 잘못됐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대북전단이 핑계가 될 수 있나 생각할 것이다. 대북전단 정도에 흔들릴 체제라면 그 체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사는 일반 국민의 보통 상식일테다.

그러나 상황이 긴장 국면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그동안을 돌이켜 보면 국민들의 인식은 곧 흔들렸다.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불안해지면 무조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공포 선동'이 남한에서부터 커져간다. 민주당이 지금도 거리마다 걸어 놓고 있는 현수막 문구인 "평화가 안보다" 라는 이상한 논리다.

우리 국민들은 이런 국면을 견뎌낼 수 있을까? 북한의 이 노림수에 우리 국민들은 의연하게 처음의 생각대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보편적 상식을 지켜낼 수 있을까? 북한은 독재자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상식적인 행동이라도 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북한 주민들은 기약 없이, 억압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북한을 상대로 어떤 경우에도 물러서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원칙은 무엇일까? 아니 우리에게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정말 그로테스크한 풍경은 민간단체의 대북전단을 막는 데 혼신을 다하는 민주당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자신들이 몸을 던져 이루었다고 늘 핏대를 세운다는 사실이다.

이종철(전 고려대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