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을 전공한 중년의 교수님이 고색창연(古色蒼然)한 한옥 마을 고샅길을 거닐다가 '多不有時'라고 쓴 작은 간판을 단 초가(草家) 건물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한자(漢字)를 많이 알지는 못해도 이 정도는 읽을 수 있는데, 이게 과연 무슨 뜻일까?" "한문(漢文)에 조예(造詣)가 깊은 어느 식자(識者)의 심심파적일까, 아니면 무슨 심오한 뜻이라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난해(難解)한 한자성어를 단 초가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촌로(村老)가 "여기서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궁금하던 차에 간판을 가리키며 "마을에 이 글자를 쓴 분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자신이 썼다는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 뜻이 무엇이냐?"고 정중히 문의했더니,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하며 그것은 다름 아닌 'WC(다불유시)의 파자(破子)'라고 했다.
두 번째 이야기. 내로라하는 대구의 선비와 서울의 양반이 사자성어(四字成語) 실력 겨루기에 밤을 새울 지경이었다. 새벽녘에 이르러 대구의 선비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대월동화'가 무슨 뜻인지 아시오?"라는 질문에 서울 양반의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大月東火'란 '대구백화점은 월요일에 놀고 동아백화점은 화요일에 쉰다'는 뜻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러자 서울 양반이 뒤질세라 반격에 나섰다. "그럼 '현월신목'의 뜻을 아시오?"라는 질의에 이번에는 대구 선비의 대답이 궁색해졌다. 서울 양반은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그 뜻을 설파했다. '現月新木'은 현대백화점은 휴일이 월요일이고 신세계백화점은 목요일이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한자를 모르고서는 즐길 수 없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이요 문자유희(文字遊戱)의 경지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 집안 어른들에게 천자문을 조금 익혔고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한자가 병기(倂記)된 국어 교과서로 공부를 했다. 그런데 5학년 올라가면서 교과서에 한자가 사라져버렸다. 고등학교 때 교과목에서 한문과 고문을 일부 접했지만 그것이 보다 깊이있는 공부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자는 대학시절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면서 그리고 일본어와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다시 익혔다.
1970년경부터 한글 전용이 시행되면서 학교 교육에서 한자가 사라졌다. 한자는 일부 전공이나 특정 직종에 필요한 선택과목이 되었다. 그 여파로 어휘력과 문해력에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심각하다. 대학생이 전공서적을 읽지 못하고 전문용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정치(精緻)한 사고와 미묘(微妙)한 감정의 표현력이 떨어졌다. 한자를 몰라서 벌어지는 웃지못할 촌극도 허다하다.
'무운(武運)을 빈다'를 '무운(無運)을 빈다'로, '甚深(심심)한 사과'를 '심심풀이 사과'로,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이해하기도 한다. 공명(公明)과 공명(功名), 비행(飛行)과 비행(非行), 선물(先物)과 선물(膳物), 사고(事故)와 사고(思考), 사전(事前)과 사전(辭典), 인도(印度)와 인도(人道), 전자(前者)와 전자(電子), 전후(前後)와 전후(戰後), 지명(地名)과 지명(指命), 해독(解毒)과 해독(解讀)의 구별이 어렵다.
심지어 '이지적'(理智的)이라는 단어를 'easy적'으로 해석하는 기발한 오해도 일어난다. 우리가 한자를 도외시하는 동안 그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국적 불명의 외래어들이다. 혀가 꼬여서 읽기조차 어려운 아파트 이름부터가 그렇다. 외래어를 모르면 한국어가 곤란할 지경이다. 그렇게 글로벌(global)한 짬뽕 언어를 쓰면서 우리 삶이 얼마나 모던(modern)하고 럭셔리(luxury)해졌는지 의문이다.
한글 전용 이후 우리 언어생활이 얼마나 더 멋스러워졌고 우리 정신문화는 얼마나 더 품격이 높아졌을까. 오지랖 넓게 중국에서 기원한 한자에 대한 박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자어가 70% 이상인 우리말에 대한 문해력과 표현력의 위기를 우려하는 것이다. 한자를 모르면 언어의 축약과 전문용어의 표현이 어렵다. 우리의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 그리고 선조들의 사상체계도 모두 한자로 기록되어 있다.
미국 중고등학생들이 영어에 섞여있는 라틴어 공부에 열중하는 이유가 있다. 어원(語源)과 고어(古語)를 모르고서는 고등 학문과 전문 분야의 학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한자를 알아야 한국어를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 아름다운 한글과 의미심장한 한자를 병용(竝用)하는 것이 우리의 언어생활과 의식세계를 한층 더 멋스럽고 심오하게 만들 것이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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