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에케케이리아’ 2800년 전 누드 올림픽 평화정신

입력 2024-07-03 12:30:51 수정 2024-07-03 17:59:23

1스타리온 규격 '스타디움' 유래…네로 시 낭송 우승 월계관 받아
그리스 올림픽 평화 유지 지켰던 고대 스파르타 역할 할 최강국은

프로필라이아. 올림피아 스타디온 입구.
프로필라이아. 올림피아 스타디온 입구.

파리 올림픽이 이달 26일 막을 올린다. 현대 올림픽은 1896년 시작됐지만, 그 기원인 고대 올림픽 1회 대회는 B.C776년 열렸다. 올해로 꼭 2800년 역사다. 고대 올림픽의 흥미로운 이모저모를 현지 탐방으로 들여다본다.

◆ B.C776년 1회 올림픽, 1스타디온 크기에 맞춘 운동장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여행의 로망 에게해.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부 올림피아로 가보자. 아치형 돌 출입구 프로필라이아(propylaia)를 지나면 경기장 스타디온(Stadion)이 아늑하게 펼쳐진다. 경기장 양쪽으로 자연 경사를 이루는 녹색 잔디 관중석이 싱그럽다. 돌로 만든 육상경기 출발선이 2800 성상(星霜)을 딛고 오롯하다.

스타디온. 이곳에서 B.C776년 1회 고대 올림픽이 열렸다.
스타디온. 이곳에서 B.C776년 1회 고대 올림픽이 열렸다.

B.C776년 이곳에서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후 393년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제국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전래 그리스 신앙행사라면서 올림픽을 중단시킬 때까지 무려 1169년간 4년마다 열렸다.

버려졌던 올림피아를 1766년 영국 고고학자 리차드 챈들러가 찾아내고, 1829년 프랑스 '모레 학술탐사대(모레=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독일 고고학 팀이 말끔하게 되살려냈다. 돌로 만든 출발선에서 결승선까지 거리는 1스타디온. 대략 192m다. 천하장사 헤라클레스가 한숨에 달릴 수 있다는 거리다. 스타디온 규격에 맞게 만든 운동장을 역시 스타디온이라 불렀다. 로마 시대 라틴어로 스타디움(Stadium, 라틴어 장소 접미사 움)이 돼 오늘의 영어에 이른다.

4두 전차. 태양신 헬리오스가 4두 전차를 타고 달리는 모습. B.C330년 도자기 그림. 대영박물관
4두 전차. 태양신 헬리오스가 4두 전차를 타고 달리는 모습. B.C330년 도자기 그림. 대영박물관

◆펠로프스... 끔찍한 올림픽 기원 전승설화

올림픽 기원 전승 설화가 흥미롭다. 올림피아가 위치한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에게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딸 히포다메이아가 있었다. 오이노마오스는 사위 손에 죽는다는 신탁(Oracle)을 받았다. 죽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딸을 결혼시키지 않으면 된다. 딸을 독신으로 늙게 할 비정한 방법이 고약하다.

결혼 안내문을 방으로 써 내붙였다. "나와 전차 경주를 벌여 이기면 내 딸과 결혼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읽고 섣불리 덤벼든 12명의 젊은이들이 그만 결혼식장 주단 길이 아닌 저승길에 올랐다. 방에 붙은 조건을 못 본 탓이다. "지면 죽는다". 오이노마오스 왕에게는 아버지인 전쟁의 신 아레스(마르스)가 물려준 바람처럼 빠른 명마에다 최고의 전차제조 기술을 가진 마부 미르틸로스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펠로프스라는 젊은이가 왕의 마부 미르틸로스를 꼬드겼다. "내가 이겨 결혼하면 첫날밤을 나 대신 그대가 신부인 공주와 자게나". 황당한 감언이설의 유혹에 넘어간 마부는 경기 전날 밤 왕의 전차 바퀴에서 굴대 나사를 뽑고, 밀랍을 채웠다. 다음날. 경주 도중 바퀴가 빠져 오이노마오스 왕은 마차 전복사고 부음에 올랐다. 펠로프스는 공주와 결혼하며 피사의 왕위에 올라 감사 기념제를 제우스에게 바쳤다. 그 행사가 올림픽이다. 마부는 첫날밤 신방길은 커녕 황천길에 올랐다.

올림픽 성화 채화 장소. 현대 올림픽의 전통. 헤라이온.
올림픽 성화 채화 장소. 현대 올림픽의 전통. 헤라이온.

프랑스 파리를 뜨겁게 밝힐 하계올림픽 성화가 현지시간 4월16일 그리스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에서 채화됐다.
프랑스 파리를 뜨겁게 밝힐 하계올림픽 성화가 현지시간 4월16일 그리스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에서 채화됐다.

◆올림픽 성화... 히틀러가 만든 이벤트

스타디온 프로필라이아 북쪽 100여m 지점에 도리아 양식 기둥이 세련된 직선미를 뽐내는 신전이 자리한다. 헤라를 모시는 신전 헤라이온(Heraion)이다. 신전 앞 사각 형태 돌구조물이 올림픽 성화 채화 장소다. 여사제 복장 페플로스를 입은 여인들이 태양열을 이용해 불을 붙인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서도 이런 성화 행사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올림픽 성화는 11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였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딴 그 대회. 히틀러가 올림픽을 체제 홍보 수단으로 삼기 위해 올림픽을 띄우면서 고안해낸 선전 도구가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다.

나체 원반 던지기 선수. B.C490년. 루브르 박물관
나체 원반 던지기 선수. B.C490년. 루브르 박물관

◆나체 경기... 알몸으로 달려 1등 뒤 유행

제15회 올림픽이 열린 B.C 720년 올림피아 경기장. 스파르타 출신 아칸토스가 관람객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옷을 안 입고 나타났으니 말이다. 요즘 같으면 출전 자격 박탈인데... 아칸토스가 벌거벗고 달려 장거리 달리기(오늘날 5천m) 돌리코스에서 1등을 거머쥔다.

이후 올림픽 선수들이 페리조마라고 불리는 샅바 비슷한 일종의 속옷을 벗고 달리는 나체 경기 풍속이 생겼다고 B.C 1세기 로마시대 그리스 역사가 디오니시오스는 적는다. 200년 뒤 2세기에 활약했던 파우사니아스 기록은 좀 다르다. B.C 720년 올림픽 경기 나체달리기의 주역이 단거리 달리기(오늘날 200m) 스타디온에 출전한 메가라 출신 오르시포스라는 거다.

◆여성 참가 금지... 구경만 해도 사형

B.C 720년부터 나체로 진행된 올림픽. 여성은 경기는 커녕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스포츠를 너무 좋아해서, 몰래 구경한 여인은 경기장 옆에 있는 크로노스산 티파이온 절벽에서 밀어 죽였다. 하지만, B.C 6세기 초 분위기가 바뀌어 여자경기가 생겼다. 헤라 여신을 기념해 헤라이아(Heraia)로 불렸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포스터. 이때부터 현대 올림픽 여성 경기 시작. 아테네 판아테나이아 스타디온 전시관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포스터. 이때부터 현대 올림픽 여성 경기 시작. 아테네 판아테나이아 스타디온 전시관

남자 올림픽 전에 운동장 크기를 6분의 5로 줄여 펼쳤다. 무릎 위까지 살짝 올라가는 키톤(Chiton)을 입고 경기를 벌였다. 우승한 여성에게는 희생의식 때 잡은 소고기를 부상으로 안겼다. 현대 올림픽은 1912년 5회 스웨덴 스톡홀름 대회, 뜻밖에 많이 벗어야 하는 수영종목부터 여성 경기가 포함됐다.

◆자유 시민 자비 참가, 10달 지옥훈련

지중해 각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의 자유 시민들만 참여할 수 있었다. 자기 돈으로 장비도 사고, 여행경비도 마련하는 점이 요즘과 다르다. 선수들은 참가 전 10개월 동안 고국에서 훈련을 받았다. 대회 한 달 전 올림피아 옆 폴리스 엘리스에 모였다. 올림피아는 4년에 한 번씩 제전을 치르면 텅 빈다.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엘리스에서 한 달 훈련 뒤, 자격심사를 통과해야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이곳 올리브 가지를 잘라 우승자에게 관을 만들어 수여.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이곳 올리브 가지를 잘라 우승자에게 관을 만들어 수여.

10달 전부터 올림픽 진행겸 심판 헬라노디카이(hellanodikai)를 엘리스 시민 가운데 추첨으로 뽑아 준비했다. B.C400년 95회 대회부터는 9명, B.C 368년 103회 대회부터는 12명이었다. 자격심사를 통과한 선수단과 심판진은 개막식 이틀 전 올림피아로 걸어서 갔다. 황소 1백 마리를 앞세웠다. 제전(祭典)이기 때문에 제우스에게 바치는 희생의식 짐승이었다. 의식 뒤에는 맛난 음식으로 변해 참가자들의 배를 불렸다.

승리의 상징 야자나무 가지와 올리브관을 손에 든 우승자. 211년-217년 로마 카라칼라 황제 시기 동전. 불가리아 소피아 고고학 박물관
승리의 상징 야자나무 가지와 올리브관을 손에 든 우승자. 211년-217년 로마 카라칼라 황제 시기 동전. 불가리아 소피아 고고학 박물관

◆체육경기 올리브관... 시낭송 월계관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으로 가보자. 성화 채화 장소인 헤라 신전에서 가깝다. 우승자에게 신전 옆 올리브 나무가지를 꺾어 만든 올리브관을 씌워줬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체육경기 말고 시낭송, 즉 문학 분야가 있었다. 여기서 우승하면 월계수 잎으로 만든 월계관(月桂冠)을 씌워 줬다.

로마시대 폭군 네로는 그리스문화에 심취했고, 211회 대회 시기를 늦춰 67년 개최한 뒤 여기 참가해 시낭송 분야 우승을 거머쥐었다. 네로는 자신의 시낭송 실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원로원 의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올림픽 금메달 1년 뒤 68년 네로는 반란으로 자살한다.

◆에케케이리아... 올림픽 휴전

'에케케이리아(Ekecheiria)'. 그리스인들은 올림픽 전후 1달, 나중에는 3달간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이런 올림픽 평화를 에케케이리아라고 부른다. 1993년 국제올림픽위원회와 유엔은 "올림픽 이상과 스포츠를 통한 평화롭고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30년도 더 됐지만, 지금 이스라엘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는? 그리스 올림픽에서 에케케이리아가 가능했던 것은 펠로폰네소스 최강국 스파르타가 나선 덕분이다. 지금 지구촌 최강국은? 고대 그리스처럼 3달만이라도 총성 없는 에케케이리아의 파리 올림픽을 꿈꿔 본다.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