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未忘] 산사태 취약지역의 취약한 점들… 앞으로의 숙제는?

입력 2024-07-02 20:37:19 수정 2024-07-02 20:43:48

지난해 경북 산사태 인명피해지 11곳 중 취약지역 지정은 2곳뿐
지정된 곳도 소유주 반대로 사방공사 시행 못 하는 등 한계
결국 중요한 건 '예측과 대응'… 경북도 스마트마을방송 시스템 확대 구축

지난달 18일 찾은 경북 봉화군 학산리 일대 산사태 복구 현장. 지난해 7월 이곳에선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며 50대 부부가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윤정훈 기자
지난달 18일 찾은 경북 봉화군 학산리 일대 산사태 복구 현장. 지난해 7월 이곳에선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며 50대 부부가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윤정훈 기자

지난해 여름 경북 곳곳에 큰 피해를 준 산사태는 취약지역 지정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그 자체가 가진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아울러 예측 시스템 정교화, 대피 체계 개선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도 함께 남겼다.

◆취약지역 지정됐지만…소유주 동의 못 얻어 사방공사 좌절

지난달 27일 감사원은 '산사태·산불 등 산림재난 대비실태' 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경북 내에서 집중호우에 의한 산사태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11곳 중 여전히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이 9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2곳도 피해를 비켜가진 못했다. 그중 1곳은 지난해 7월 15일 2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북 봉화군 학산리이다. 이곳의 경우 2017년 취약지역으로 지정됐으나 사방사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봉화군 산림소득자원과 관계자는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곳 아래에 경작지가 있다. 사방사업을 추진하려면 그 경작지를 통해 중장비 등이 들어와야 하는데, 경작지 소유주가 동의하지 않아 사방사업을 추진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유지에 사방사업을 추진하려면 당연히 소유주 동의가 필요한데, 통상 10명 중 5명은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소유주는 땅을 소유만 하고 있을 뿐 다른 지역에 사는 경우가 많아 위험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북 문경시 동로면 수평2리 피해 현장. 전봇대 하나가 쓰러져 외나무다리처럼 도랑을 잇고 있었다. 윤정훈 기자
지난해 7월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북 문경시 동로면 수평2리 피해 현장. 전봇대 하나가 쓰러져 외나무다리처럼 도랑을 잇고 있었다. 윤정훈 기자
지난해 7월 19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산사태 현장에서 한 이재민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같은 필지라도 취약지역 제외…면적 넓게 지정할 수 없어

취약지역 중 다른 1곳은 지난해 7월 15일 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문경시 수평리 산68번지다.

문경시에 따르면, 수평리 산68번지 내 393.8㎡ 상당과 수평리 산73 내 855㎡를 합친 1천248㎡ 부지가 2014년 취약지역으로 지정됐고, 2016년 사방댐이 준공됐다.

다만, 취약지역이 산68번지 전체 필지 면적(36만4천508㎡) 중 극히 일부만 지정됐고, 이에 따라 인명피해가 발생한 곳은 사방댐이 조성된 취약지역과 같은 필지로 묶이지만, 결국 취약지역에 포함되지는 않게 됐다.

이기하 경북대 건설방재공학과 교수는 "국유지에선 산림청이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 사방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데, 사유지는 '땅값'을 우려한 소유주의 반대로 좌절되거나 제한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강제할 수 없다. 소유주가 산사태 예방 설비를 자체적으로 설치할 경우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순 있지만, 실효성을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감사원에 확인한 결과, 2019~2021년 기초조사와 실태조사를 거쳐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 심의 대상지로 판정된 3천216곳 중 315곳이 지정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돼 지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부결된 315곳 중 135곳은 '소유주 등 반대'가 이유였다.

경북은 부결된 30곳 중 20곳이 소유주 등의 반대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못했고, 대구 역시 28곳 가운데 16곳이 소유주 등의 반대로 취약지역 지정이 이뤄질 수 없었다.

◆경북 1만5천여 곳 기초조사 우선 지역서 제외

그런가 하면, 인명피해 가능성이 큰 지역이 기초조사 우선 지역에서 제외된 문제점도 적발됐다.

감사원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산림조합은 기초조사 우선 지역 선정 당시 산지와 주민이 사는 집의 연접거리(맞닿은 거리)가 50m 이내에 해당하는 12만6천464곳을 선별했다.

그러나 이 중 11만6천809곳이 경북을 비롯한 10개 지자체에 편중돼있다는 이유로 산림청과 협의하지 않고 해당 지자체에 있는 6만9천682곳을 임의로 제외했다.

감사원으로부터 추가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제외된 곳 중 경북은 22.0%(1만5천318곳)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고, 이어 경남 17.5%(1만2천217곳), 경기 13.6%(9천465곳) 순이었다.

경북에서 제외된 지역 중 지난해 7월 산사태로 2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경북 봉화군 서동리도 포함돼있었다.

감사원은 "산지와 인가의 거리가 50m 이내로 산사태 발생 시 인명피해 위험이 있는 지역들이 기초조사 우선지역에서 부당하게 제외되면서 취약지역으로 지정·관리되지 못한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 19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산사태 현장에서 한 이재민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산사태는 취약·비취약지역 가리지 않아… 결국 예측이 답

전문가들은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관리되지 않는 곳에서 피해가 대부분 발생한 만큼, 정확한 예측과 이에 따른 신속한 대피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군우 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정확한 산사태 예측을 위해선 계측기의 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지표 변위계, 경사계 등 표면에 일부가 드러나 있는 계측기의 경우 그 주변을 지나가던 등산객이나 짐승이 건들려 계측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며 "땅에 완전히 묻는 형태로, 오류가 적고 토질에 대한 정보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광섬유 센서가 기술 발전을 통해 더욱 보편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측과 대응'을 중시하는 기조는 대구시와 경북도의 추진 대책들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해 재해로 '혼쭐'이 났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올해 산사태 대책으로 현재 2단계(주의보, 경보) 예측정보 체계에 '예비경보'를 추가해 대피 시간을 1시간 더 추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경북 역시 주민들이 정보를 쉽게 접하고 신속히 대피할 수 있도록 '스마트마을방송' 시스템을 확대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도규명 경북도 산림정책과 과장은 "기존 재난 안내는 문자로 이뤄졌는데, 스마트마을방송 시스템은 담당 부서가 작성한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해 주민들에게 휴대전화나 집 전화로 안내해 특히 어르신들에게 효과적이다"며 "2022년 9곳 시군에서 시작해 지난해 3곳 시군을 추가했다. 올해는 포항, 경주, 영덕 등 3곳을 또다시 추가하는 등 점진적으로 늘려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기획탐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