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가짜 조각가의 미술품 사기

입력 2024-07-02 11:29:08 수정 2024-07-02 16:10:33

김성우 경북부 기자

경북부 김성우 기자
경북부 김성우 기자

민선 8기 취임 2주년을 앞둔 지난달 25일 김하수 청도군수는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청도군 예산 사상 초유 7천억원 돌파 ▷국·도비 공모 사업 역대 최대 확보 ▷중앙정부 수상 실적 최다 등 성과를 자랑했다.

김 군수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잠시 멈춰 섰다. 다시 운을 뗀 그는 최근 '특정 예술 작품 특혜 구매 건'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뭇매를 맞았던 일을 언급했다.

김 군수는 "경찰 수사 결과 저는 구속된 조각가로부터 커피 한 잔 얻어 마신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는 다소 톤이 높아졌고, 표정에는 '억울함'이 묻어났다.

세계적 조각가라 사칭한 A씨와 청도군의 악연은 A씨의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됐다. A씨는 초선인 김 군수가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A씨는 프랑스 유명 고등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를 나와 파리 7대학 교수로 재직했다는 등 화려한 이력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청도군 이서면 출신이고, 저는 6·25 때 혼혈아로 태어났다. 곧장 이탈리아의 유명 조각가 집안으로 입양돼 어릴 적부터 세계적 작가로 그릇을 키워 왔다"는 내용을 담았다.

편지를 받은 김 군수는 A씨가 운영하는 강원도 영월의 미술관을 직접 찾아가 전시된 작품을 확인했다. 그 자리에 동석한 영월군 관계자도 A씨를 '유명 작가'라 치켜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A씨의 어머니 고향이 청도라는 사실과, 슬픈 가정사를 딛고 월드클래스(World-Class)로 성장했다는 점이 김 군수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일의 진척이 빨라졌다.

짐작건대 김 군수는 A씨 정도 스펙이면 청도에 그의 이름을 딴 조각공원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을 듯싶다.

실제 경남 창원에는 시립으로 운영하는 '문신미술관'이 있다. 파리에서 추상 조각의 거장으로 활동한 문신(1923∼1995)의 이름을 따 지었다. 문신이 프랑스에서 세계적 명성을 뒤로하고 귀향해 마련한 것으로, 이제는 국내외 미술가들의 성지가 됐다.

이후 청도군은 A씨의 작품 20여 점을 2억9천여만원에 구매하고, 신화랑풍류마을 등지에 설치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이나 정파에서 사건에 대한 경중이나 본질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혈세 낭비'니 '특혜 구입'이라는 등 비판을 쏟아냈다.

온라인상에서도 "청도군이 공공 조형물 심의위원회의를 무시하고 A씨의 작품을 무더기로 수의계약을 통해 구매했다. 뒷거래 의혹이 의심된다"는 등 의혹이 쏟아졌다.

급기야 청도군과 김 군수는 '해당 작가에 대한 세밀한 검증이 없었고, 작품 구입 과정에서 빚어진 사소한 절차상 실수'라고 시인했다.

정면 돌파에 나선 청도군은 A씨를 사법 당국에 고발했다. 경찰은 청도군에 접근해 가짜 조형물 20점을 설치, 2억9천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 A씨의 이력과 경력이 허위에다, 그 어머니가 청도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현재 김 군수는 청도군을 '문화·예술·관광 허브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3대 미래 정책 비전의 하나로 제시한 상태다. 청도군 직제도 기존 문화관광과를 관광정책과와 문화예술과 등 2개 과로 확대 개편하는 등 문화예술 진흥에 시동을 걸었다.

앞선 실수가 청도 문화예술 발전을 막지 않길 바란다. 누군가는 "성공은 실패 위에 세워지고, 실패는 혁신의 상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