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티웨이 승무원이 소방훈련을 받는 까닭

입력 2024-06-19 10:31:37

직원으로 출근하고 CEO로 퇴근합니다
문혜영 지음 / 피서산장 펴냄

직원으로 출근하고 CEO로 퇴근합니다
직원으로 출근하고 CEO로 퇴근합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그해 1월. 책을 쓰려는데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내용의 전화가 걸려왔다. 며칠 뒤 만나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구의 병원 CS팀장이면서 컨설팅 회사 대표였다.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그는 자기 힘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2023년 봄, 10년차 병원 CS전문가 문혜영의 '직원으로 출근하고 CEO로 퇴근합니다'가 세상에 나왔다.

운동을 좋아했던 꼬마가 수영과 테니스를 배우면서 국가대표 꿈나무로 자라고 유니버시아드 메달리스트를 거쳐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한 후 병원 코디네이터로 입사했다가 컨설팅회사 CEO가 된 이야기. 이쯤 되면 다이내믹하거나 거창한 드라마투르기를 기대할 법하다. 그러나 미안하다. 저자의 과거사는 20쪽 즈음에서 끝난다. 이후로는 단호하면서 친절하게 풀어가는 병원 서비스이야기다. 이 책은 그걸 위해 쓰였으니까.

'직원으로 출근하고 CEO로 퇴근합니다'는 의료계 선후배가 없어 눈치 볼 인맥이 없는,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어디서 굴러먹던 스포츠인"의 생생한 현장 경험이 담긴 병원 CS 지침서이다.

의료에 서비스를 입히려면 조직의 습관을 개선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컴플레인 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가 강조하는 건, 병원서비스의 '이질성 이해하기.' 이를테면 부서별 특성을 고려한 응대 기준을 세우고 직원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는 병원 문화를 만들자는 얘기다. 또 기준을 세웠다면 '어떻게' 실천하느냐보다 '왜' 그 기준을 만들었고 지켜야 하는지, 직원과 공유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책에 따르면 통상의 병원 CS는 고객의 컴플레인이나 요구사항에 대한 병원 측 응대에 집중되어 있는데 아무리 교육해도 실패하는 이유는 '듣기의 오류'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들어야 상대의 감정과 핵심 욕구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어릴 적 경험에서 비롯된 사업에 대한 왜곡된 신념에 따라 남편을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아붙인 자신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해결책으로 직급별 사례에 따른 듣기 연습을 제시한다.

무명 시절엔 배우 혼자서 모든 스케줄을 처리할 수 있지만 인기를 얻고 활동이 많아지면 매니저와 기획사가 필요한 것처럼, 병원도 일정 규모가 되면 CS전문가와 손잡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결정권자의 변화와 변신 의지 없이는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병원장에게 먼저 일독을 권하는 건 이 때문일 터. 작고 얇은 책이지만 종합병원 몇 개를 합친 무게가 담겼다. 교과서 같은 정형적 틀에서 벗어났고 중요한 장면마다 대화체로 가독성을 높였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문혜영은 말한다. "CS는 광고의 최종 목적지"라고. 우리의 광고가 허위 과장광고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 질소로 부풀려진 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과정이고, 내원에서 퇴원까지 환자와 보호자가 불편함 없도록 보살피는 모든 행위라고 말이다. 책의 마지막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병원 CS를 역설해온 저자의 최종 선언이다. "어디선가 본 이름을 기억한 소비자가 의사 앞에 앉을 때까지, 그리고 만족스런 미소로 문을 나설 때까지 무시로 만나는 우리의 노력이 CS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