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입력 2024-06-13 09:59:51

[책]폭염 살인
제프 구델 지음/ 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폭염 이미지.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폭염 이미지.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2024년 5월 멕시코 남부 연안에서 유카탄검은짖는원숭이 83마리가 높은 나무에서 사과처럼 우수수 떨어져 죽은 채로 발견됐다. 사인(死因)은 심각한 탈수와 고열 증세였다. 2021년 미국 태평양 북서부 연안에서는 아직 날 줄도 모르는 새끼 독수리 수십 마리가 불구덩이처럼 달궈진 둥지 위에서 투신했다. 묵시록의 한 장면 같은 이런 죽음은 인간도 피할 수 없었다. 2019년 전 세계 폭염 사망자는 50만명에 육박한다. 이 중 자신이 '더워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상상한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20여년 간 기후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폭염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쉽고 빠르게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는 평균기온 45도를 웃도는 파키스탄부터 시카고, 사라져가는 남극에서 파리까지 가로지르며 우리 일상과 신체, 사회 시스템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참상을 낱낱이 기록했다. 추락하는 새부터 허덕이는 물고기, 말라버린 작물, 쓰러지는 노동자, 졸도하는 도시 산책자에 관한 그 생생한 묘사는 여전히 '폭염 불감증' 상태인 우리에게 영화 '설국열차'가 얼어버린 지구 위를 돌 듯 뜨겁게 달궈진 지구 위를 '열국 열차'를 타고 도는 듯한 충격을 안겨준다.

진화의 속도를 넘어 폭주하는 더위, 그리고 그것이 불러올 예측 불허의 재앙 앞에서 에어컨의 냉기가 언제까지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분명한 건 극한 더위가 불러올 죽음의 연쇄 반응 앞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그러면서 식탁 물가 폭등부터 전력난, 슈퍼 산불, 전염병에 이르기까지 폭염 시대가 불러올 잔인한 나비효과에 대해 경고한다.

연구에 따르면, 2023년 식량 불안정에 처한 인구는 3억4천500만명에 달할 것이며 2050년에 이르면 인구 절반이 굶주리게 된다. 탄소 발생의 주범이자 더위에 취약한 소와 돼지, 닭 등의 축산물은 제일 먼저 우리 식탁에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는 팬데믹의 서막일 뿐 폭염은 질병 알고리즘도 새로 쓰고 있다. 전염병 매개체들의 서식지가 북상하며 인간 서식지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WHO는 2080년에 이르면 전 세계 인구의 60퍼센트가 대표적인 모기 매개 질병인 뎅기열에 감염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염은 우리 사회 시스템도 붕괴시킨다. 통계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자살과 유산이 늘어난다. 혐오 발언과 강간 사건을 비롯한 각종 강력범죄 빈도도 높아진다. 지구상 모든 존재의 생존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문제가 골딜록스 존(Goldilocks zone), 즉 생존 가능 영역 밖으로 한 발짝 내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절망은 이르다면서 폭염진화사부터 산업구조, 질병 알고리즘, 기후과학을 망라하며 살인 폭염에 대처하기 위한 과학적 근거와 해결 방안도 함께 고민한다. 특히 폭염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위험을 적극 알리기 위해 허리케인 '카트리나'처럼 폭염에도 이름을 붙이고 이미지화하는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스페인의 세비야는 폭염에 '소에(Zoe)'라는 이름을 붙이고 적극 알린 덕분에 과거 하루 14~15명에 달했던 폭염 사망 건을 막을 수 있었다. 아울러 그는 불과 20년 뒤면 전 세계 인구 70%가 살게 될 도시의 모습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뉴욕시는 100만 그루의 나무를 어 도시에 그늘을 만들었고, 세비야는 기술을 활용해 지하수로 도시를 식혔다.

이처럼 전 세계 국가들이 폭염에 대비해 조금씩 도시의 얼굴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현주소는 어떠한가. '폭염 살인'을 제대로 대비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점검할 때다. 508쪽, 2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