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한국연극에서 해체와 재구성 방식으로 문제작들을 선보여 온 김현탁 연출가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윌리로먼 비긴즈>(대학로극장 쿼드, 극단 성북동비둘기)로 재창작한 작품 이야기다. 대학로 쿼드 블랙박스 극장에서 무대화된 <윌리로먼 비긴즈>는 트레드밀(러닝머신)에서 내려와 1928년식 쉐보레 자동차로 질주한다. 원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렇다. 세일즈맨 윌리 로먼은 은퇴한 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가장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불안하게 살아간다. 현실에 적응할 수 없는 불안한 윌리의 내면과 불확실한 미래, 성공하지 못한 아버지의 과거의 시절(시간)을 잊지 못하는 윌리 로먼의 불안정한 내면과 자식들의 일탈, 행복을 담보할 수 없는 불안함은 자살로 이어지게 된다.
1920년대 쉐보레를 타고 달리는 <윌리로먼 비긴즈>는 세일즈맨으로 달리던 찬란한 인생의 순간으로 역주행하며 과거시간으로 돌아간다. 아들 비프와의 행복했던 시절, 여자에게 유혹당하고 불륜 장면을 들킨 과거,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가자는 밴과의 대화들이 윌리 로먼의 상상으로 파편화되어 놀이로 재구성된다. 윌리 로먼 인생을 재조합하듯 말이다. 김현탁은 가족의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족쇄를 끊어버리고 파편적인 과거시간으로 재구성 시키고 있다. 윌리의 삶과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할까. 1950년대 미국영화의 세트장에 온 것처럼 김현탁의 놀이는 현재와 과거 시간이 엉켜 재구성되는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쇼트화 시키고 있다. 올림픽 쇼트트랙 영웅들과 애니매이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한국사회를 부착해 연극적으로 환기시키는 미장센은 김현탁 스러움으로 탁월하게 배치된다.
◆ 김현탁의 < 세일즈맨의 죽음> 해체와 재구성의 방식
김현탁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2010년 아서 밀러의 원제(原題) 그대로 초연되면서 이듬해 동아연극상 새 개념 연극상을 받았다. 미국태생의 작가 아서 밀러가 1949년 발표한 "세일즈맨의 죽음"은 20세기 미국 대공황을 배경으로 아메리칸드림 속에서 허망한 꿈을 쫓는 한 인간과 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원작의 서사를 해체해 죽음을 앞둔 윌리의 회상과 환상으로 구현한 해체와 재구성의 무대화 방식은 김현탁을 각인하는 작품이 되었다. 극단의 작품 설명은 이렇다. "원작이 해체된 세일즈맨의 죽음은, 죽음을 앞둔 윌리의 회상과 환상으로 구현한'내용적 재구성'과 전복된 자동차를 표현한 트레드밀(러닝머신)을 타고 끝없이 달리는 윌리의 육체적 현전을 앞세운 '형식적 재구성'으로 표현되었다."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세일즈맨으로 살아가는 윌리 로먼의 고뇌와 가족사, 반복적인 육체노동으로도 삶의 자본을 흡수할 수 없는 윌리 로먼의 처열한 아픔과 희생(아버지)을 김현탁의 방식으로 무대화된 공연이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항 시대를 경험한 아서 밀러는 세일즈맨으로 성공해 미국 사회에서 부를 누리고 싶었던 극중 인물 윌리 로먼을 그려냈다. 분열되어 가는 가족사와 대공항 이전의 과거에 집착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을 꿈꾸는 평범한 시대의 아버지 윌리 로먼으로 불리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1949년도에 발표한 뒤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작품으로 평가 받아왔다. 가족이 될 수 없는 분열의 파열음들을 김현탁은 국가, 시민과 인간, 자본주의와 미국주의, 패권 경제, 아버지와 가족이라는 키워드로 해체하고 재구성시켜 윌리 로먼을 대한민국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물로 표현시킨 것이다.
무대에서 현존화 되는 인물로 투영되는 극중 인물의 반복적인 노동과 자본주의는 한국전쟁과 고도 산업화를 거쳐 80년의 세월을 역동적으로 달려온 한국 사회에서도 윌리 로먼이 살아가기에는 달라질 수 없는 현실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은 무대 중앙에 놓인 러닝머신에서 뛰고 달리는 정장 차림 윌리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달린다. 뛰고 달릴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육체만을 허락하는 러닝머신은 시대의 세일즈맨이 살아가는 불특정 국가이자 사회적 공간이다. 정장은 땀으로 베여있고 거친 숨을 몰아치며 달리는 배우의 육체와 감각성은 현존되어 불편함으로 바라보게 한다.
윌리 로먼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 불편함으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 침전물들을 김현탁은 타격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로 환치(換置)되는 것이다. 러닝머신(트레드밀)은 국가로, 윌리 로만은 이 시대의 시민이자 아버지로 변주되어 한국형 자본주의 민낯과 부조리한 사회현실의 환부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윌리 로먼이 달리는 비좁은 트레드밀에서 윌리 로먼의 죽음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희생된 죽음으로 변주되는 것이다. 그만큼 김현탁 재창작의 개념은 원작 서사의 시·공간을 이동시켜 극적 표현을 전환하는 방식의 재창작보다는 원작 텍스트를 완전 해체의 방식이다. 해체된 무대공간을 전위적인 작업방식으로 텍스트의 플롯을 난도질하고, 배우들을 무대로 현전시키는 날것의 수행적인 움직임과 언어를 통해 텍스트는 김현탁의 언어로 연극적인 생동을 형성하고 있다.
시·공간, 배경, 극중 인물, 동작, 움직임, 감정, 인물의 대립, 갈등, 메시지, 배우들의 정형화된 재현성과 현실풍경을 거세하고 놀이, 의외성, 환기, 생산적인 움직임과 몸의 활용, 역 배치 등으로 탈구조적인 수용성을 무대로 들어내면서 재창작을 재활용하지 않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대표작품으로 <김현탁의 산불>(2008), <세일즈맨의 죽음>(2010) <열녀 춘향>(2015),<자전거>(2014), 장 주네 '하녀들'을 재창작한 <하녀들-apply to a play>(2015), <대머리 여가수, 왜 잰 이혼했으꼬?>(2022), <메디아 온 미디어>(2023), <베르롤트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 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2023) 등이 그렇다.
◆ 1920년대 쉐보레를 타고 놀이 형식으로 달리는 <윌리로먼 비긴즈>
무대는 탁자와 의자 몇 개의 가구가 전부다. 가구들이 마치 레고조립처럼 쉐보레 자동차로 변주되는 장면 뒤로 김현탁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커튼콜을 뒤집는다. 이들이 위로하고 있는 것은 배우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한테 위로의 박수를 보내면서 시작된다. 실제 무대감독을 날것 그대로의 캐릭터로 무대에 현존시켜 <윌리로먼 비긴즈>가 연극이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일 수 있으므로, 연극적인 환영을 거세하며 시작된다. 2만 달러에 인생의 희망을 걸고 미국발 패권 자본주의 고속화 산업도로를 달리는 윌리 로먼은 미국의 대표적인 세계 IT 기업과 미국 신자유주의 부의 인물들로 상징되는 KFC 창업자 할랜스 샌더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을 희화화시켜 세계 자유시장 경제와 신자본주의에 조롱을 보내기도 하고, 아버지의 희생에도 가족들은 분열되어 공동체의 가족을 형성할 수 없는 고단한 삶들과 가족의 분열이 분절되어 있는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표상되기도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패권 자본주의에 조롱을 보내며 김현탁의 놀이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그만큼 김현탁 연출의 놀이 형식이 돋보이는 <윌리로먼 비긴즈>로 무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아버지로서 다이아몬드 광산 아메리칸드림, 인간의 욕망과 절망, 2만 달러를 벌기 위한 아버지의 희생과 비극적인 아픔을 놀이로 달리며 KFC부터 시작해서 애플까지 친미주의 자본화되어 있는 장면(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패러디 장면) 들이 등장하고, 쉐보레를 타고 인생을 달리고 있는 아버지의 죽음을 김현탁은 이 시대의 슈퍼맨으로 치환한다. 와이어를 몸으로 이어서 무대 천공으로 나는 슈퍼맨이 된 윌리 로먼의 죽음은 죽어서도 비극적 영웅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지금, 이 시대의 현실을 한 번 더 환기 시키는 김현탁 방식은 무대에서 여전히 현존 뒤에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공연이다. 단점은 그 놀이에 갇혀서 미국발 자본주의의 패권성만 두드러지고 아버지의 아픔은 다소 약화하여 아버지의 희생이 드러나지 않은 지점들이 아쉽다. 배우들은 김현탁의 신호를 받아 놀이의 규칙을 지키며 무대에서 진지하게 잘 놀고, 극중 인물 윌리 로먼으로 분한 장재호 배우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음에도 배우들의 놀이성 때문에 아픔의 파열음은 작다. 그럼에도 김현탁스러움으로 여전히 살아있는 작품이다.
※ 김건표 교수의 '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가 매주 수요일 연재를 끝내고 '김건표의 연극리뷰'로 매주 금요일 매일신문 디지털국에서 새롭게 찾아갑니다. 순수 예술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요즘, 전국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연극의 리뷰로 그 가치를 지켜나가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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