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살려 줬더니 보따리 내놔?

입력 2024-05-01 14:30:00 수정 2024-05-01 18:44:28

정욱진 편집국 부국장

정욱진 편집국 부국장
정욱진 편집국 부국장

4·10 총선 참패 후유증이 길다. 보수 여당 내부에서는 잇따른 선거 참패 원인을 대구경북(TK)에 떠넘기고 있다. 총선 직후 국민의힘이 마련한 총선 참패 원인을 찾는 토론회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에 영남 출신은 배제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인천이 지역구인 윤상현 의원은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은 수도권 위기론을 당 지도부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선거 전부터 수도권 위기론을 말했는데, 당 지도부가 제대로 대처를 못 했다. (수도권 총선 패배의) 구조적인 원인은 영남 중심당"이라고 비판했다.

영남 2선 후퇴론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지역구 당선인 90명 중 59명이 영남 당선인이다. 영남 당선인을 제외하면 31명밖에 남지 않는다. 영남 출신이 배제되면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나?

'영남 자민련' 얘기도 또다시 반복됐다. 이번 총선에서 영남과 강원에서 승리했을 뿐 수도권과 충청 등에서 참패한 데 대한 그 나름의 자성이다. '영남 자민련'이라는 말 속에는 영남 정서가 대한민국의 주류 정서가 아님이 총선에서 드러난 만큼, 국민의힘은 영남 정서에서 벗어나 수도권 정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이 같은 배은망덕한 발언은 급기야 '영남 보수당'과 '수도권 보수당'을 분리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에 출마했다 낙선한 한 당내 인사는 "수도권에서의 참패는 그동안 '영남·친윤' 중심의 당 지도 체제가 이어진 데 따른 결과"라며 "수도권 유권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수도권 보수정당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영남을, 텃밭을 소외시킨다고 전국 정당이, 수도권 정당이 될 것인가? 그러면 한강 북쪽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지난 2015년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경상도 국회의원은 동메달이고, 수도권 국회의원은 금메달이다"는 망언을 내놓은 지 9년 만에 수도권 선거 승리를 위해 TK와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당내에서 터져 나오는데도 지역 정치인들은 '찍소리'도 못 한다.

국민의힘 한 책임당원은 "당비 내는 당원도 제일 많고, 인력 동원도 제일 많이 해주고, 힘들어서 대구에 내려오면 텃밭의 힘을 불어넣어 주는 곳이 TK"라며 "물에 빠져 익사 직전인 당을 구해 준 TK 국민에게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고 한술 더 떠서 물에 빠진 책임까지 지라고 한다"고 불평했다. 그러면서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질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위기를 여당이 어떻게 넘어섰는데, 은인을 향한 이 같은 손가락질에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지역 의원들이 더 문제"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의 '영남 편향' 탈피는 과제가 분명하다. 하지만 텃밭 홀대로 TK 지역민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배은망덕한 수도권 인사들의 행태는 문제다. 오히려 이번 수도권 선거 전략을 되돌아보고, 어떤 점이 수도권 민심에서 벗어났는지 분석하는 게 다음 선거에서 이득이 될 것이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될성부른 떡잎'인 정치 신인을 키워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로 육성하는 방법도 여러 전문가들이 내놓는 방안이다. 선거 3~6개월 전에 새 후보를 꽂는 것으로는 만년 2등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TK를 향한 '살려 줬더니 보따리 내놔' 식의 대응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 세대를 키우는 미래 정당, 젊은이들에게 내일이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희망 정당으로 나아갈 방안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