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코스(Pharmakos). 고대 그리스에서 민심 수습책의 하나로 내세운 '희생양'(제물)을 일컫는 말이다. 소나 양 같은 동물도 있었지만, 대체로 인간을 죽여 신에게 바쳤다. 흉년이나 전염병으로 인한 내부 혼란, 외세 침입 등 국내외 재앙이 덮쳤을 때 민심을 안정시키거나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기 위해 제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인간 파르마코스는 무연고자, 부랑자, 불구자, 가난한 자 등 제물로 삼더라도 보복이나 반발이 크지 않을 대상을 골랐다고 한다.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역대급이었다. 유럽파, 국내파를 아울러 실력이 2002 월드컵 대표팀을 능가한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경기는 졸전이었다. 아마추어 관점에서도 공격과 수비를 이어 주는 패스와 조직력, 경기 운영 능력까지 수준 이하로 보였다. 축구 팬은 물론 국민들은 아쉬움을 넘어 답답함을 나타냈다. 4강까지 올라간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선수 교체 타이밍도 이상하고, 실축이나 실점을 하더라도 싱긋이 웃기만 하는 클린스만 감독에 대해 분노했다. 국내 열성 축구 팬과 평론가들은 클린스만 감독 영입 시점부터 문제를 제기해 온 터였다. 아시안컵의 인적 '재료'는 풍부하고 품질도 수준급이었지만, 요리사(감독)가 엉터리였다. 요리사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쇄도했다. 급기야 요리사 고용인(축구협회) 책임론이 불거졌다.
4강전 패배 직후 요리사와 고용인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공교롭게 '손흥민-이강인 다툼' 사태의 전말이 불거져 나왔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배들이 호텔 휴게 공간에서 탁구를 쳤고, 선배들은 4강전을 앞둔 시점이니 그만두라고 나무라던 사이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논란은 확산됐다. 아시안컵 졸전 책임이 클린스만과 축구협회에서 '버릇없는' 후배, 이강인에게로 오롯이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손흥민과 국민들에게 사과한 이강인에게 한 치의 아량과 기회도 줄 수 없을 만큼 죄가 크다고 할 수 있을까. 선수들 사이 갈등이나 다툼은 있을 수 있고, 그것을 관리 조정하는 역할은 감독과 코치의 몫이다. 감독을 잘못 뽑은 축구협회의 포괄적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 클린스만과 축구협회장보다 이강인이 아시안컵 졸전에 대한 파르마코스로 훨씬 편한 대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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