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49> 본 윌리암스, 종달새의 비상

입력 2024-03-04 11:29:11 수정 2024-03-04 17:20:38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종달새의 비상. 서영처 교수 제공.
종달새의 비상. 서영처 교수 제공.

만물이 소생하는 본격적인 봄이다. 종달새는 봄이 무르익을 무렵 넓은 들판에서 만날 수 있다.

종달새는 소리 나는 신체를 가졌다. 종달새는 여러 개의 작은 종을 달고 다니는 새, 새 중에서도 가장 천부적인 노래의 구현자다. 종달새의 노래는 음높이, 강도, 리듬, 음 빛깔, 지속 시간 등 다양한 수사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동서양의 수많은 문학과 음악 작품이 종달새의 노래를 묘사하고 모방했다. 생김새는 그리 예쁘지 않지만 종달새만큼 봄날의 기운을 온몸으로 기쁘게 표현해내는 새는 없을 것이다.

종달새는 스프링처럼 하늘 깊은 곳으로 솟구치다가 초원으로 곤두박질한다. 비상이 생명의 본질이라면 곤두박질은 죽음의 본질이다. 비상하기 위해서는 곤두박질이 필요하다. 여기에 종달새의 운동성이 있다. 이렇게 순간의 동심원 속으로 솟구치고 뛰어드는 것이 음악이다. 종달새는 생사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초월이라는 상징성을 시각적으로 보여 준다.

본 윌리암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는 영국의 국민주의 작곡가이다. 그의 작품 '종달새의 비상'은 피겨스케이터 김연아가 선수 시절 시즌 프리 배경 음악으로 사용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종달새의 비상'은 영국의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만든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다. 영국 시인 조지 메레디스(George Meredith, 1828-1909)의 시 「종달새의 비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5음 음계가 구릉과 숲으로 이루어진 영국 전원풍경을 보여주며 낯설고 신비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본 윌리엄스는 가장 영국적인 전통을 드러내는 작곡가로 통한다. 그는 영국 전역을 다니며 찬송가와 민요, 뱃노래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민속음악을 채집하고 이러한 작업 결과를 음악에 접목시켰다.

종달새 날아올라 원을 그리네,/ 은구슬을 꿰어놓은 듯,/ 맑고 고운 소리 이어지네,

지저귐과 휘파람, 읆조림과 떨림음으로/ 노래 소리 하늘을 가득 채우네,/ 대지의 사랑을 일깨우네,/ 날개 짓하며 날아올라,/ 황금빛 술잔 같은 골짜기에/ 흘러넘치는 포도주처럼/ 우리를 창공으로 끌어 올리네.

흔히 새소리는 피콜로나 플루트 같은 목관악기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본 윌리암스는 네 개의 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바이올린의 선율과 리듬, 트릴을 사용하여 종달새의 노래와 날갯짓을 표현한다. 그의 종달새도 공중으로 날쌔게 날아올랐다가 하강하며 유쾌한 비상을 계속한다. 관현악은 넓게 펼쳐진 들판과 전원의 풍경을 그리고 바이올린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종달새의 비행과 지저귐을 들려준다. 종달새의 부름에 숲과 언덕이 화답하고 일하던 사람들도 잠시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종달새의 노래는 순수한 꿈을 일깨우고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옛 희망을 들추어낸다.

'종달새의 비상'은 진중하면서도 우아한 영국적인 분위기를 들려준다. 종달새가 선회하며 만들어내는 선율은 사람을 행복한 몽상에 빠져들게 한다. 세상을 관조하는 듯 유유자적하는 비행선은 담담한 힘을 가진다. 이 힘은 진솔한 마음과 명랑함에의 욕구를 드러내고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명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