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초등학교 때 마당에서 개를 키웠다. 지금도 기억나는 '해피'는 스피츠 종이었는데, 개가 되기도 전에, 그러니까 강아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이후로도 집에 개가 없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 내가 성인이 되어서 개를 키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애견숍은 믿을 수 없어 인터넷을 뒤진 끝에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한 브리더(breeder)를 만났다. 자기 소유의 빌라 꼭대기 층을 통째로 사육장으로 사용했다.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동물권을 지키며 번식과 입양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였다. 산이나 농장이 아니어서 좋았고, 청결해서 안심했고, 무엇보다 따님이 수의사라서 직접 예방접종을 하는 점이 맘에 들었다.
모견은 현재 임신 중인데 열흘 쯤 뒤에 출산하면 연락할 테니 2주 후에 와서 아이들을 보고 선택하되, 초유를 충분히 먹고 면역력이 생겼을 때 입양이 가능하다고. 2차 접종까지는 여기 끝내야 하니, 그때까지 가능하면 열흘마다 방문해 데려갈 강아지와 눈을 마주치고 교감하기를 권하셨다.
집으로 데려 오기 전에 개와 관련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막상 녀석이 오자 현실은 혹독했고 실제는 이론을 비웃고 있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아프다고 말하거나 자기 발로 병원에 갈 수 있지만, 동물은 전적으로 인간에 의존하는 개체라는 사실. 즉 사람이 예민하게 살피고 미리 챙겨야 한다는 얘기다. 개 입장에서 보고 생각해야만 그나마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 처음 개를 키우는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인간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 작가 정이현도 처음엔 그랬나보다.
개를 키우는 건 고사하고 만지지도 못하던 사람이 유기견보호소에서 속칭 시고르자브종인 어린 개를 데려오면서 벌어지는 일상에세이 '어린 개가 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위장하지 않는 순수함, 그 세계를 '어린 개' 덕분에 알게 된 한 인간의 용감무쌍한 성장기다. 안락사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3개월 령 루돌이를 만난 작가가 어린 개를 키우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2만 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 살아온 개라는 타자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까지를 그린 감동적인(감동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야기다.
예민하고 소심하면서 편집증적인 성격답게 작가는 치밀하게 양육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사람 자식도 맘대로 안 되는데 하물며 강아지임에랴. 그렇게 암초를 만나고 실패하는 에피소드는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웃음이 터졌다. 강아지와의 공생을 시작하는 초보자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공통의 경험이 작가의 손끝에서 유려하고 실감나게 펼쳐진다.

내가 아는 한, 반려견과 오래 함께 하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예방접종과 산책. 공생의 희로애락, 모든 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언급했듯이 개는 자각증상이 없고 스스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으니까.
반려동물과 관련해 많은 책이 있다. 고백하자면 근래 읽은 반려견 관련 서적은 이 책이 유일하다. 그런데도 장담할 수 있다. 처음 개를 키우는 사람은 '어린 개가 왔다'를 읽으시라. 반려견을 키워본 사람이나 아닌 쪽이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을 터. 심각하지 않아서 편안하고, 전문적이지 않아도 꼭 알아야 할 건 모두 담겼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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