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말뿐인 정치 개혁

입력 2024-02-26 20:02:38

박상전 논설위원
박상전 논설위원

테슬라의 돌풍으로 내연기관 자동차가 하락세지만 페라리의 세계 판매량은 2019년 1만131대에서 지난해 1만3천363대로 증가했다. 페라리를 이끄는 베네데토 비냐 CEO가 최근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200개가 넘는 특허를 출원한 비냐 CEO는 가장 인상 깊은 특허를 하나 꼽아 달라고 하자 "답은 간단하다. 바로 다음에 출원할 특허"라고 답했다. "최고의 페라리는 다음에 나오는 페라리"라고 말한 창업자 엔초 페라리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개혁과 혁신적 기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자신감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 시즌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개혁과 혁신이다. 두 단어는 선거마다 공통의 화두였으나 번번이 국민들의 실망만 불러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여야가 개혁의 아이콘을 자임하지만 평가는 갈린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시스템 공천을 빙자한 시스템 사천을 진행 중"이라고 했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을 통진당화하고 있다"고 반격했다. 서로 정치 퇴행의 주인공이라며 삿대질 중이다.

복잡한 산식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서 "국민은 정확한 방식을 몰라도 된다"는 정치인의 등장은, 우리 정치를 문맹률이 낮았던 과거로 되돌려 놨다. 위성정당 등 신당의 난립으로 50㎝에 달하는 투표용지가 재연돼 유권자의 혼란을 부추기는 점도 개선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21대 국회의원 10명 가운데 3명이 전과자다. 위법 경력이 있는 이들이 법을 만들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정치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따른다. 전과 4범인 원내 1당 대표를 두고 '별을 달아야 출세한다'는 비아냥거림은 귀가 아플 정도로 들린다.

우리 정치가 퇴보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로 '30%의 정치론'을 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치적 충성도가 낮은 40%의 국민이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치면, 나머지 유권자의 30% 마음만 얻어내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게 '30% 정치론'의 핵심이다. 이러면 어느 정당이든지 자기편이 아닌 70%의 국민은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10명 중 3명만 챙기면 정치생명 연장이 가능해지므로 국민 전체가 잘 사는 개혁과 혁신은 필요치 않게 된다. 이 같은 정치 행태가 변화되지 않는 한 보수와 진보, 양극으로 갈린 정치의 발전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변화를 불러오겠다'며 제3지대 등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으나 현재로선 기대를 걸기 힘들다.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친정집 비난에만 몰두하면서 오히려 양극화 정치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일부 신당은 정부의 지원금을 타 내려 '꼼수 입당' 사태를 벌이는 등 기존 정당보다 구태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세계 스포츠 시장 점유율 1위인 나이키가 경쟁 업체로 아디다스와 푸마가 아닌 일본 게임 회사 닌텐도를 꼽았다. 사람들이 집에서 게임만 한다면 야외 활동을 수반해야 하는 나이키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진단에서다.

우리 정치가 장기적 발전을 이루려면 경쟁 상대를 주변에서만 찾으려 들면 안 된다. 경쟁 후보보다 1표만이라도 더 받아 당선만 되자는 정치공학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30%'가 아닌 전체가 잘 사는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정치철학적 고찰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돌리는 편협한 사고 구조는, 구태의 씨앗이 되고 개혁의 걸림돌로만 작동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