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여성 6명 중 1명이 진단받아
임신…매우 급격한 삶 전환 초래
신체·심리적 변화 간과하기 쉬워
김유환 대구효성병원 고위험산모센터 진료과장은 전공의 시절 만난 한 산모때문에 산후 우울증의 위험성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전공의 시절 임신 기간 중 상당기간을 병원에 입원해 보내면서 조기진통 치료 등 여러 검사로 힘들어했던 산모였어요. 퇴원하면서 이 산모가 했던 말이 '시어머니께 다 돌려드릴 거예요' 였어요. 그 때는 임신 기간동안 몸이 힘들어서 그런 줄 알고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가 되실 거예요'라고 달래드렸죠. 그런데 반 년 지난 뒤에 그 산모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응급실 전화로 듣게 됐죠. 그 때 산후 우울증이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 날로 늘어가는 산후 우울증
분당차병원 산부인과 류현미 교수와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조희영 교수 연구팀이 국내 병원 두 곳의 임산부 2천512명을 임신 12주부터 출산 후 4주까지 추적 관찰해 분석한 결과 전체의 16.32%인 410명에서 산후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출산 여성 6명 중 한 명 꼴로 겪는다는 말이다.
임신, 출산, 육아는 여성의 삶을 매우 급격한 전환을 단기간에 경험하게 만든다. 때문에 심리적, 육체적 부담이 올 수 밖에 없고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하면 질병으로 이어진다. 이 중 정서 장애로 이어지면 '산후 우울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김유환 교수는 "실제로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두 배 가량 우울증의 빈도가 높으며, 그 발병 또한 생식가능 연령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임신과 관련한 '주산기 우울증'은 언제나 산모와 그 가족을 위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산기 우울증은 임신 전 기간과 출산 후 1년 이내에 언제든 발병할 수 있으며, '임신 중 우울증'과 '산후 우울증'으로 분류된다. 특히 의료진에게 도움을 받을 기회가 적어지는 산욕기시기에 발생하는 산후 우울증은 여성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 쉽게 찾아내지 못하는 이유
산후 우울증의 위험한 이유는 그 위험성에 비해 질병의 의심 증상, 진단, 치료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하나하나 발견하기 쉽지 않은 데 있다. 임신과 출산 전후의 우울한 증상은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한 일반적인 수면, 식이, 만족감 등의 변화 때문이라고 넘어가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산부인과적 진료가 이뤄지는 와중에도 그 증상을 간과하기 십상이며 산모들 또한 본인의 심리적 변화를 임신한 상황 때문이라 생각하고 이를 언급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김유환 교수는 "정신과적 상담과 치료에 비교적으로 호의적인 서양에서조차 실제로 산모나 가족의 상담 요청으로 임신 관련 우울증이 진단되는 경우는 20%를 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산후우울증의 70% 가량은 그 정도가 경미하고 출산 후 2주 이내로 증상이 좋아지는 반면, 이 시기 이후에도 증상이 지속된다면 그 정도가 심하고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의료진에게 알리고 적극적인 상담과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상담이 필요
임산부들이 겪는 우울증의 위험 요인으로는 임신 전후로 많은 것들이 변화하면서 겪게 되는 불안과 스트레스, 정서·물질·제도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 예상치 못한 임신의 정신적 충격, 과거 우울증을 앓았던 병력 등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의 주된 증상으로는 수면 장애, 흥미나 즐거움의 감퇴, 죄책감 또는 상실감, 무기력함 또는 피곤함, 오래 지속되는 우울감, 집중력 또는 사고력 저하, 식욕 또는 체중의 급격한 변화, 자살 충동 등이 있다. 이러한 위험 요인이 있거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본인 또는 가족이 알아챈다면 그 즉시 병원과 의료진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우울증으로 인한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경도 또는 중등도의 우울증은 약물 요법이 아닌 심리사회적 치료로도 충분히 좋은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으며 보통 조언과 상담, 행동 교정 등으로 치료를 하게 되므로, 흔히들 망설이게 되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가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이나 진료를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그 부담이 훨씬 줄어있다.
김유환 교수는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변하는 신체적, 심리적 상태를 발견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산후 우울증을 겪는 여성들이 더 쉽게 치료를 받고 나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며 "가족간의 대화와 소통 또한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울타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산모와 가족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도움말 김유환 대구효성병원 고위험산모센터 진료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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