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25일은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치러지는 날이다.
농협은 200만 명의 조합원과 약 670조원의 자산, 그리고 28개 계열회사를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농업 발전은 물론 농촌사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조직이다. 특히 농협중앙회장은 금융기관과 형평성을 맞춘다는 명분으로 대통령보다 2~3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보다 6~7배나 많은 연봉을 받지만 농산물 수급 불안이 생기고 농가소득이 떨어져도 회장을 질책하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더구나 견제 장치가 취약하고 무이자로 지원하는 상호지원자금 등 줄 세우기 딱 좋은 수단을 가지고 있으니 예부터 농협중앙회장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졌다고 알려져 왔다.
1989년부터 시작된 농협중앙회장 선출은 그 과정에서 과열·혼탁 선거 때문에 2009년부터는 300명의 대의원 조합장들이 선출해 왔다. 하지만 후보자와 개인적 친분이나 영향력이 작용하고 선출 방식의 대표성과 공공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올해는 전국 1천111개 조합장(조합원 3천 명 이상 2표)들이 직접 선출하게 됐다. 직선제로 선거의 투명성이나 지배구조의 정당성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겠지만 후보자 정견 발표나 토론회도 없이 2주 동안만 선거운동이 허용되는 깜깜이 선거는 여전하다.
이번 농협중앙회장 선거에는 8명이나 입후보했다고 한다. 모두가 많은 공약을 제시했지만 정작 어떤 후보가 무슨 공약을 했는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언론을 통해 단편적으로 드러난 내용을 보면 농협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농업 농촌의 미래를 준비함에 있어 농협의 역할을 고민하는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 주를 이루고 이해를 같이하는 패거리들끼리의 이합집산하는 정략적 접근이 난무한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지난해 농협중앙회는 '100년 농협운동'을 주창해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과연 농협이 늙고 지친 조합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지역사회를 지키는 보루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느 후보가 내세운 공약처럼 조합장들에게 중앙회가 월 100만원의 활동 수당과 자가용을 제공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벼랑 끝에 선 조합원을 두고 수억원이나 되는 고액 연봉을 챙기며 이대로 쭉 100년 농협을 외친들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농업협동조합은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농협법 제1조)'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이다. 하지만 현실은 농민들의 고령화와 조합원 이질화 등으로 경제사업과 영농지도 등 고유 사업의 비중이 줄어들고 조합원들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다.
따라서 농협중앙회장 스스로가 제왕적 권위와 기득권을 내려놓는 뼈를 깎는 농협 개혁을 통해 조합원들의 삶을 보듬겠다고 나설 때 비로소 농업이나 농촌은 물론 농협도 지속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제 농협의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한다. 선거 과정에서 뱉어 놓은 수많은 공약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신세 진 사람들을 당선 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농업과 농촌, 농협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신임 회장은 명심해 주길 바란다.
시골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선 개인의 이해보다 위기의 농업과 농촌을 살리려는 투철한 문제의식, 농협 개혁의 결단과 실천력을 가진 지도자를 뽑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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