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44>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The Way We Were

입력 2023-12-11 12:00:12 수정 2023-12-11 15:25:03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영화 The Way We were의 한 장면. 네이버 캡처
영화 The Way We were의 한 장면. 네이버 캡처

어느새 한 해가 훌쩍 지나 12월의 중순에 접어들었다. 갈수록 세월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세월의 흐름을 해와 달, 빛과 그림자의 장난이라고 했다. 생각할수록 공감이 가는 말이다. 12월이면 오래된 시간의 숲에서 한두 가지 이야기 거리를 찾아내게 된다.

스산한 겨울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다. '추억'으로 번역된 시드니 폴락 감독의 1973년 영화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노래한 주제가는 두 주인공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와 어우러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한과 여운을 남긴다.

그땐 꼭 그래야만 했을까. 이념이 무엇보다 중요하던 시대엔 그것이 사랑보다도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경제적 이익이 우선하는 이 시대의 시각으로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을 위해 사랑을 희생할 수 있었던 시대는 오히려 낭만적이었다.

자의식이 강하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케이티와 부르주아 가정 출신의 작가 지망생 하벨은 대학 졸업 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이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혼에 성공하고 아이도 낳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미국 전역을 휩쓸던 매카시즘 열풍은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비판적이고 투쟁적인 케이티는 하벨의 부르주아 친구들과 견해차로 사사건건 부딪히고 하벨은 부담감을 느낀다. 자존심 강한 케이티는 작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하벨을 위해 이혼을 결심하고 아이와 함께 떠난다.

세월이 흐르고 스산한 겨울, 뉴욕의 번화가에서 이들은 우연히 마주친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이 섞인 복잡한 심경으로 안부를 묻는 두 사람, 이들 사이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부르는 가 흐른다. 다시 가두로 나가 반핵운동을 벌이는 케이티와 일정이 있는 호텔로 들어가는 하벨, 사랑이 남아 있지만 두 사람은 담담히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는 이미 고전이 되었다. 마지막 장면 때문일까. 삭막한 겨울이면 이 노래가 자주 생각난다. 그 길이 이 길은 아니지만 집 근처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가 떠오른다. 햇살 좋은 대낮 아무도 없는 길을 따라 걸으며 이 노래를 부른다. 잔잔하던 노래가 어느새 커져 있다. "We will remember. Whenever we remember, The way we were, The way we were…."

이따금 노래를 부르며 케이티와 하벨의 사랑을 떠올린다. 이 시대의 보수와 진보만큼이나 두 사람의 사랑은 한 지붕 아래 동거가 어려웠던 것일까. 알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오해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우선하는 이념이 뭐길래 그토록 애태우고 갈망하면서도 이별을 택해야 했을까. 어쩌면 이별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관객들의 가슴 속에서 영원한 것이 되었다. 아무튼 사랑이란 열정이고 욕망이며 연민과 회한이고, 또한 선이고 명예이며 평화라는 모든 견해에 깊이 공감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