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초대석] 2024년 '검은 코끼리' 온다

입력 2023-11-13 13:30:00 수정 2023-11-13 16:22:56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1918년 스페인독감 이후 100여 년 만에 온 코로나19를 미국부터 약이 아니라 돈으로 틀어막는 바람에 온 세계는 지금 엄청난 금융 후유증을 겪고 있다. '검은 코끼리'(black elephant)는 예상은 가능하지만 무시되거나 무시당하는 큰 위협을 의미하는 말인데 2024년을 목전에 둔 세계는 '검은 코끼리의 함정'으로 빠져들고 있다.

금융에서는 3년간의 대대적인 '돈 잔치 시대'에서, 금리 인상으로 '빚잔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재무구조가 약한 기업, 유동성이 부족한 개도국의 부도 사태가 날 수 있다. 항상 그렇지만 금리는 올릴 때보다 올리고 난 후에 사달이 난다.

제조업에서는 '바퀴 달린 핸드폰'으로 자동차와 핸드폰을 대신할 신성장 산업으로 각광받던 전기차가 보급률이 13%대에 도달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캐즘(Chasm)의 시기에 빠졌다. 잘나가던 전기차, 배터리, 배터리 소재 업체들의 주가 급락에 답이 있고 전기차 공급망 등 모든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기다린다.

고부채화, 고금리의 일상화에 고령화까지 겹쳤고 이는 필연적으로 저성장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산업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 전쟁이고, 교역에서는 역글로벌화 시대의 공급망 전쟁이고, 유럽과 중동, 아시아에서는 미중의 힘겨루기 대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그간 '달러 박스'였던 중국, 최고 우방국 미국도 이젠 모두 '회색 코뿔소'이다. 미국은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대중 전략의 말 바꾸기를 하면서 '정원은 작게 담장은 높게 치는'(Small Yard High Fence)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터에 대해 철저히 대중 봉쇄를 하고 동맹끼리만 나누어 먹자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 무역으로 사는 나라 한국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지금 한국은 동맹에 동조하면 돈이 울고, 돈에 동조하면 미국의 주먹이 두렵다.

미국이 중국을 '기술의 창'으로 공격하자 중국은 '자원의 방패'로 대응하고 있다. 전기차용 영구자석, 자동차용 반도체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 통제에 이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미일 동맹, 칩4 동맹 다 좋지만 한국은 기술과 장비는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고, 시장은 중국에 의존하는 나라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API, 희토류는 40~90%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한국에 늑대(중국)는 가까이 있고, 늑대와 앙숙인 독수리(미국)는 멀리 있다. 이미 제조업이라는 초원을 점령해 버린 늑대를 독수리가 쫓아내기는 어렵다. 땅에 사는 한국은 가진 것들에 레버리지를 걸어서 더 큰 것을 얻어야지 하늘에 떠 있는 독수리가 조언하는 대로 그냥 따라가면 먹을 것이 없다.

기술은 시장을 못 이긴다. 공장은 시장 가까운 데 짓는 것이지 보조금을 많이 주는 데 짓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동맹 전략이 한국에는 대중국 외교안보 전략에 큰 병풍은 될 수 있지만, 돈 버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된다. 한국은 비록 약한 나라들이지만 미중의 전쟁 속에서 실익을 착실하게 챙기는 호주, 필리핀, 베트남, 인도의 외교 전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난세에 영웅 나고 불황에 거상 난다. 버블을 잠재우고 거상을 만드는 것은 신기술이다. 창조적 파괴는 기존 제품의 가격과 성능을 폭파하는 것이지 가격을 올리는 혁신은 없다. 혁신은 기존 제품에는 죽을 맛인 세상에 없던 신제품을 등장시켜 적을 블루오션에서 피 터지는 경쟁 속, 붉은 피로 흥건한 레드오션으로 보내는 전략이다. 인터넷, 모바일에 이은 AI가 바로 그것이다.

약한 자를 모두 쓰러뜨리면 콜로세움의 검투사는 자유를 얻듯이 혁신자는 살아남은 자의 축제를 마음껏 즐긴다. 팡(FANNG),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 7) 등은 IB들의 작문 실력이 만들어낸 칭호지만 인터넷, 스마트폰, 메타, AI 등에서 궁극적으로는 살아남은 승자의 호사를 누리는 기업들이다.

반도체 빼고는 잘하는 것이 없어진 한국, 검은 코끼리, 회색 코뿔소 누가 오든 간에 새로운 전환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혁신 전략과 투자 전략을 제대로 세워야 산다. AI 시대 미국, 중국, 유럽, 일본이 모두 AI에 필수인 반도체에 천문학적 투자를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은 당리당략만 따지다가 실기하면 진짜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