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녕(古寧)가야, 왜 복원해야 하나

입력 2023-11-10 13:48:26 수정 2023-11-12 19:25:00

지정 스님(봉천사 주지·고녕가야선양회 대표)

고녕가야선양회 대표 봉천사 주지 지정 스님.
고녕가야선양회 대표 봉천사 주지 지정 스님.

우리나라 국민에게 '고녕(古寧)가야'에 대해서 물어보면 헷갈린다는 반응이 많다. 고녕가야는 지금의 상주·함창·문경에 있던 6가야 중의 하나인데, 고령(高靈)의 '대가야'와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녕가야가 사라지다시피 한 것은 고령의 대가야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의도적으로 고녕가야를 지운 것이 지금껏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의하면 가야는 서기 42년에 건국됐다.

또한 삼국유사 '5가야' 조에는 6가야의 위치가 정확하게 기록돼 있다. 금관가야는 김해이고, 고녕가야는 고려시대의 함녕(咸寧)으로 지금의 상주·함창·문경이다. 그 외에 아라가야는 함안, 대가야는 고령, 성산가야는 경산, 소가야는 고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가 가야사 공부를 하면서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나오는 가야를 부정하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를 가야라고 우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매우 놀랐다. 그들의 스승인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을 추종해 가야가 서기 3세기 말에 건국됐다고 우긴다. 식민사학자들은 야마토왜(大和倭)가 4~6세기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해 통치했으며 이를 임나 또는 가야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조선을 병합하는 것은 침략이 아니라 고토 회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녕가야는 서기 42년 태조 고로왕이 건국해서 2대 마종왕을 거쳐 3대 이현왕 때인 서기 254년에 신라에 멸망당했다.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가야 건국 시기 이전에 이미 멸망했다. 시기뿐 아니라 그들이 주장하는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낙동강 중상류 지점에 존재했다. 이에 당황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함창고녕가야는 가야산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가야사에서 제외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는 가야의 근거지인 낙동강 문화와 역사를 정체가 모호하다면서 부인했는데 그런 인습이 지금껏 계속돼 왔다. 일례로 선산부터 상주, 함창, 예천, 안동까지 낙동강 주변에는 가야 고분 형식인 산정수혈식 무덤 수만 기가 파괴된 채 방치되고 있다.

이런 역사 왜곡에 분개한 필자를 비롯한 상주·함창·문경의 뜻있는 인사들이 '상주함창문경 고녕가야선양회'를 만들었다. 지난 10월 28일 오후에는 상주시 함창역 광장에서 제5회 함창고녕가야 역사 복원 국민대회를 열어 고녕가야 복원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본 행사에 앞서 오전에는 함창읍 윤직리의 머리메 머릿돌에서 고녕가야 고천제(告天祭)를 올렸다. 고녕가야 멸망 1천700여 년 만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고녕가야의 역사를 복원하고 나아가 민족의 기상을 되찾겠다고 다짐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 함창의 고녕가야 왕릉에서 '고녕국태조가야왕릉'(古寧國太祖伽倻王陵)이라는 묘비가 발견됐고, 숙종 38년(1712) 왕명으로 묘비와 석물이 다시 세워졌다.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고녕군을 고릉(古陵)현이라고 부른 것이 바로 이 태조왕릉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 곁에는 왕비릉도 있다. 신라는 254년 고녕가야를 멸망시킨 후 고녕가야의 호족 80여 가를 현재 영해 괴시마을인 사도성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때 끌려간 함창 김씨 후예 중 한 사람이 고려 말 대찬성 벼슬을 지낸 김택인데 함창 김씨 씨족은 전국적으로 3만5천 명에 달한다. 현재 함창 주변에는 무려 2천여 기의 고분들이 도굴돼 방치된 채 신음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갈못, 남산고성, 성혈석, 가야진, 머리메 등 무수한 가야의 유적과 유물들이 전해 온다.

고녕가야 역사 복원은 단순한 지방사 회복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일제가 우리 민족을 영구 지배하기 위해 조작한 고대사를 복원하는 대한민국 역사 공정의 초석이 되는 것이다. 함창고녕가야 역사가 바로 서면 한국 고대사 전반의 수정은 불가피하다. 조선사편수회를 계승한 사학계의 입장에서는 난처한 일이겠지만 국가 발전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