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얼마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리커창(李克强) 전 중국 총리는 명언을 많이 남겼다. "장강과 황하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長江黃河不會倒流)는 말도 그중 하나다. 장강은 세계 3대 강의 하나인 양쯔강으로, 중국의 젖줄이다. 황하는 중국 문명의 발상지이다. 두 강은 중국을 상징한다. 리 전 총리는 결국 중국은 거꾸로 가지 않는다, 거꾸로 가면 안 된다고 외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이제 중국의 역류를 막아온 마지막 제방이 무너졌다.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을 황폐화시켰다. 이념의 광기가 중국 대륙을 휩쓸었다. 그 광풍을 막고, 중국을 G2의 일원으로 우뚝 세운 것은 덩샤오핑의 실용주의와 개혁 개방이었다. 하지만 시진핑의 중국은 마오쩌둥 시대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 역류를 온몸으로 막아선 게 리 전 총리였다.
그는 합리주의자였다. 재미 역사학자 레이 황은 일찍이 중국이 근대화에 뒤처진 이유가 '수량 관리'가 가능한 나라를 만들지 못한 데 있다고 보았다. 재화를 안정적으로 거래하고,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수치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2007년 리 전 총리는 중국의 GDP 등 경제지표를 믿을 수 없고, 단지 참고용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력 소비량, 열차 화물량, 은행 대출액 세 가지로 경제성장 속도를 측정했다. 리 전 총리는 "통계자료는 안정적이고 빠른 경제성장을 장기적으로 보장하는 토대로, 그 품질에 생사(生死)가 달린 것"이라고 역설했다. 제대로 된 근대국가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리 전 총리는 이념보다 민생을 우선했다. 2020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중국인 6억 명의 월수입은 겨우 1천 위안(약 18만7천 원)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1년 전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샤오캉(小康) 사회의 건설을 완수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샤오캉은 국민이 어느 정도 편안한 생활을 누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리 전 총리의 발언은 중국 인구의 절반이 여전히 절대빈곤 상태라는 고백이었다. 시 주석의 거짓말을 폭로한 셈이다.
시 주석의 국정 목표는 '공동부유'(共同富裕)다. 시진핑 사상인 이른바 '중국 특색 사회주의' 건설의 핵심 키워드이다. 경제성장으로 야기된 빈부격차와 청년 빈곤을 해소하자는 거지만, 문제는 방법이다. 마르크스주의적 평등을 강조하고, 국가 주도의 산업 경제를 지향한다. 이에 반해 리 전 총리는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고 시장을 존중하는 덩샤오핑의 노선에 서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두 노선은 극명하게 대립되었다. 시진핑은 제로 코로나(Zero COVID) 정책을 고수했다. 발병 지역은 무지막지하게 봉쇄했다. 중국의 자부심과 시 주석의 신화를 위해서였다. 그 결과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고, 빈곤층의 삶이 무너졌지만 막무가내였다. 리 전 총리는 봉쇄에 들어간 우한(武漢)을 전격 방문했다. 한편 청두시가 노점상을 자유롭게 허용해 "하룻밤 사이에 10만 명의 일자리를 해결했다"고 극찬했다. 직접 노점상을 찾아가 "노점 경제는 중요한 일자리 근원으로서 중국 경제의 생기"라고도 했다. 고통받는 서민을 위로하고, 희망의 불씨를 살린 행보였다
리 전 총리는 중국의 최고위급 인사 중 유일하게 시 주석의 정책을 비판한 미스터 쓴소리였다. 하지만 임기 말 그의 민생 행보는 언론에서 사라지고, 허수아비 총리로 떨어졌다. 올해 3월 퇴임 전, 그는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 하늘에도 눈이 있다"(人在幹, 天在看. 蒼天有眼)는 말을 남겼다. 제갈량이 북벌에 나서며 남긴 말이라고 한다. 시진핑에 대한 경고였을 것이다.
중국의 과거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두 개의 서로 다른 길을 상징한다. 전자는 일인 독재와 계획경제, 후자는 권력 분산과 개혁 개방의 길이다. 지난 30여 년간 중국은 덩샤오핑의 길을 따라 잠자는 사자에서 G2로 올라섰다. 지금 중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개혁 개방파의 기수 후야오방(胡耀邦)의 아들 후더핑(胡德平)은 지금 중국이 "구소련처럼 권력 집중과 계획경제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하며 "개혁 개방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리커창의 죽음으로 그 길은 사라졌다. 중국의 미래에 불행한 일이고, 세계와 한국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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