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지워지는 리커창

입력 2023-10-31 20:05:39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66년 중국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이후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식 사진에는 마오의 후계자로 지명됐던 국방부장 린뱌오(林彪)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거 스노가 마오와 환담하는 1970년 사진에도 린뱌오가 마오 옆에서 '마오쩌둥 어록'을 들고 있다. 하지만 마오 암살 계획이 들통나면서 1971년 9월 비행기로 몽골로 망명하려다 추락사한 이후 그 사진에서 린뱌오는 지워졌다. 이후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중국 모든 곳에서 사라졌다.

마오가 장제스(蔣介石)의 토벌에 쫓겨 옌안(延安)으로 도망간 대장정 직후인 1937년 바오안(保安)에서 마오와 저우언라이(周恩來), 주더(朱德), 친방셴(秦邦憲)이 함께 찍은 사진도 같은 변화를 겪었다. 이 사진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의 역사 서적과 각종 간행물에 게재됐으나 친방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친방셴은 혁명 투쟁 방식에서 정규전을 지향한 군사고문 오토 브라운을 추종해 게릴라전을 지향한 마오와 대립했다.

더 노골적인 변화는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4인방(帮)-장칭(江靑), 왕훙원(王洪文), 장춘차오(張春橋), 야오원위안(姚文元)-의 삭제다. 1976년 9월 18일 천안문 광장의 마오 추도식에 참석한 20여 명의 공산당 지도부 가운데 이들도 있었다.

옆으로 나란히 서서 마오의 시신에 묵념하고 있는 이들의 사진은 중국과 외국의 모든 신문 잡지에 실렸다. 하지만 마오에 이어 국가주석이 된 화궈평(華國鋒)에 의해 이들이 숙청되고 11월에 공개된 사진에는 이들이 모두 지워지고 그들이 서 있던 자리는 뻐금히 비어 있다. 사진 설명에도 이름 대신 XXX라고 쓰여 있다. 지운 것을 숨기려 하지도 않은 것이다.('20세기 그 인물사-정치권력과 정보 조작의 역사', 알랭 주베르)

리커창(李克强) 전 중국 총리의 사망 소식이 중국 내 인터넷 포털의 검색어 순위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관영 인민일보와 신화통신도 공식 부고만 소개했을 뿐 생전 활동이나 업적 등을 소개하는 기사는 내지 않았다. 리커창이 지워지고 있는 양상이다. 총리로 있을 때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는 등 소신 발언으로 시진핑(習近平)이 껄끄러워했다고 하니 이유가 짐작이 간다. 중국은 마오 때나 시진핑 때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