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숭실학교를 나온 엘리트였다. 1907년 그는 미국 선교사의 중매로 세례명[盤石·베드로]을 가진 강반석과 결혼했다. 명신학교 등에서 선생을 하며 '조선국민회'에 참여해 투옥도 됐다. 1919년엔 중강진에서 3·1운동을 하고 중국 임강(臨江)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광제의원'을 열어 한의로 생계하며 독립운동에 관심을 기울이다 김일성(본명 김성주)이 14세이던 1926년 32세로 죽었다.
이듬해 김일성은 명문인 육문(毓文)중에 입학했다. 국적을 밝히는 여권 제도는 서구에서도 전쟁을 하며 국민국가를 완성해 가던 1900년쯤 도입됐다. 김형직이 임강으로 갈 때 중국엔 없었다. 그는 공산당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세 아들과 남게 된 강반석은 생계 때문인지 안도(安圖)현 공안대장(경찰지구대장 정도)인 중국인 목한장(穆漢章)에게 재가했는데, 이는 김일성 부모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란 증거이다(조광준과 재혼했다는 주장도 있다). 김일성은 양부의 경제력 덕에 육문중을 다녔다.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중국에서 떼어 내 만주국으로 독립시켰다(만주사변). 이듬해엔 상해를 침공해 군을 주둔시켰는데(상해사변), 그해 강반석이 죽었다. 그 직전 김일성은 금지된 조직인 조선공산청년회에 가입한 것이 밝혀져 퇴학됐다. 그리고 항일(抗日) 공산 조직에 들어갔는데, 이 조직이 중국인 주보중(周保中)이 이끄는 동북항일연군(聯軍)으로 규합됐다.
상해사변 석 달 뒤 윤봉길이 상해에서 열린 일본왕 생일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사령관을 척살했다. 그 답례로 장개석이 김구를 만나 주자, 김구는 조선인 군사 조직 결성을 요청했다. 장개석은 중일전쟁(1937)이 일어나고도 한참 지난 1940년 중국군에 들어와 있던 조선인과 일본군으로 왔다가 투항한 조선인 등으로 대대 정도의 부대를 만들게 했다, 임정은 이를 '광복군'으로 불렀으나, 이 부대를 통수하지 못했다. 장개석 정부가 써먹으려고 만든 중국군이었기 때문이다.
상해사변 후 장개석 정부가 약한 모습을 보이자 중국 공산 조직이 활발해졌다. 도처에서 폭동을 일으켰기에 1934년 장개석 군이 대대적인 토벌에 나섰다. 공산 세력은 방어하기 좋은 연안(延安)으로 도주했다. 중공은 이를 '대장정'(大長征)으로 미화했지만, 대만은 '달아날 찬(竄)'을 넣어 '대류찬'(大流竄)으로 부른다. 1937년 일본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공격하자(중일전쟁 발발) 장개석 군은 양자강 남쪽으로 밀려났다. 연안에 숨은 중국 공산군은 소극적인 항일전만 했다.
비슷한 시기 만주국의 만주군과 일본의 관동군도 동북항일연군을 잡는 토벌을 강화했다. 1942년 동북항일연군이 소련으로 도주하자, 소련도 필요시 써먹을 생각으로 88독립보병여단으로 만들었다. 동북항일연군은 소련군이 된 것이기에 중공은 동북항일연군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1945년 해방기는 혼잡했지만 애국 열기가 강했기에 정통성을 따졌다. 당시 우리는 광복군을 정확히 알았기에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삼지 않았다.
김일성은 군정(軍政)을 한 소련군이 88여단에서 중대장(대위)을 한 그를 콕 집어 내세워 줬기에 북한의 지도자가 됐다. 그렇건만 김일성은 88여단의 자기 중대를 인민군의 뿌리로 삼지 않았다. 그도 정통을 따지는 애국심은 갖고 있었던 것. 그런데 2018년 손자인 김정은이 1932년 김일성이 만들어 동북항일연군 산하 부대가 된 조직을 인민군의 뿌리로 삼았다. 인민군 역사를 늘리려 자기존대를 한 것.
홍범도는 자유시 참변 후 살아남은 대한독립군단 세력을 소련군에 헌납했다. 그후 이들은 소련이 벌인 전투에서 소멸되고 우리의 무장독립 조직은 사라졌다. 무장독립 세력을 소련군에 바쳐 절멸시키고 자신은 소련군 대위가 된 홍범도를 우리 군의 뿌리로 봐야 하는가.
북한은 주체 때문에 강반석의 재가를 밝히지 않았다. 소련군이 북한을 해방시켰지만, 김일성은 88여단의 중대를 인민군의 뿌리로 삼지 않는 양심은 보였다. 그런데 김정은이 자기존대를 하다 조선인민군을 만주 동북항일연군에 부속시키는 '반(反)주체'를 해 버렸다.
북한은 자기존대가 넘쳐 진짜 주체를 놓친 것인데, 이를 우리가 따라야 하는가. 근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 우리의 정통성을 허무는 '반(半)애국자'가 너무 많다. 우리 정치의 절반을 주사파가 차지해 오염시킨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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