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의롭고 명예로운 해병대

입력 2023-09-10 18:04:36 수정 2023-09-10 18:48:12

김병구 동부지역본부장
김병구 동부지역본부장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가 사건 발생 50여 일이나 지나서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6일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채 상병 순직을 추모하는 49재가 치러졌지만, 여태 책임자 처벌은커녕 책임 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불거진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수사 외압 또는 항명 논란은 해병대 정신 및 군의 사기와 직결된 것으로, 수사와 함께 국회 국정조사나 특별검사법을 통해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경찰은 지난달 24일 국방부 조사본부로부터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기록을 넘겨받은 데 이어 지난 7일 채 상병의 복무지인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해병대 1사단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지난 7월 19일 급류가 몰아치던 경북 예천군 보문교 일대 내성천에서 어떻게 구명조끼나 로프 등 안전 장비를 전혀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것인지, 어떤 경로로 어떤 지시가 오갔는지 낱낱이 밝혀야 하겠다.

외부 눈치를 보지 않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고 철저한 수사로 채 상병의 사망 원인을 둘러싼 의혹을 밝히고 책임을 제대로 물을 것을 국민들은 요구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등 혐의로 입건된 박 전 수사단장을 둘러싼 의혹 규명도 국민적 관심사다.

박 전 단장은 7월 30일 채 상병 순직과 관련해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을 비롯한 지휘부 8명에게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한 조사보고서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 지난달 2일 경찰에 이첩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즉시 보고서를 회수하고 박 전 단장을 보직 해임한 데 이어 군 검찰은 지난달 30일 항명 등의 혐의로 박 전 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박 전 단장은 사단장과 여단장을 뺀 대대장 이하로 과실치사 혐의를 한정하라는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국방부 검찰단에서 채 상병 순직 사건의 경찰 이첩을 보류시킨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한 대통령실 개입 논란에 대해 윤 대통령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국방부도 임 사단장을 혐의 대상에서 빼라고 지시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 전 단장과 대통령실 양측 중 한쪽은 명백히 허위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군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수사단장이 상부의 명령을 부당하게 거부했거나 대통령실이 사망 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면 모두 국기 문란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눈길을 모으는 것은 국방부 장관이 결재한 조사보고서가 경찰에 이첩됐다 다시 회수됐다는 점, 경찰에 재이첩된 보고서엔 당초 박 전 단장이 조사한 내용과 달리 사단장과 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가 빠졌다는 점 등이다.

지난달 30일 국방부 검찰단이 제출한 박 전 단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해병대 부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왔다는 해병대 사령관의 진술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장관의 이 지시가 정당한 명령인지, 부당한 외압인지 판단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초점이 될 수 있겠다.

이번 두 사건에 대한 철저하고 성역 없는 수사로 한 해병대원의 어처구니없는 죽음과 해병대 장교의 명예가 제대로 규명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