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사회문화연구실장
대구광역시 달성군 강정(江亭)은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일컫는 지명이다. 현재 동양 최대의 수문이라 불리는 '강정고령보'가 있고, 물 문화관인 '디아크'(The ARC)가 자리해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면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핫플레이스로 유명하다. 이곳 강정에서 1970년대에 젊은 작가들이 집단적 미술운동을 펼치면서 전국 최초의 현대미술제가 열렸다. 바로 한국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으며 큰 좌표를 형성한 '대구현대미술제'다.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열렸던 대구현대미술제는 200여 명의 미술가가 집결한 거대한 미술 축제가 되면서 대구를 현대미술의 중심도시로 만드는 데 시금석 역할을 했다. 당시 대구현대미술제 참여 작가인 이강소, 최병소, 김구림 등은 야외 설치미술과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등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박서보, 김창열, 이우환 등 국내외 유명 미술가가 총집결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1974년 첫선을 보인 대구현대미술의 실험성은 서울(1975), 광주·부산(1976), 춘천·청주(1977), 전주(1978)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대한민국 미술 지형도상에 큰 변화를 주었다. 당시의 대구현대미술제가 대한민국 현대미술의 발전을 위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된 것이다.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의 역사성을 계승한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구 강정 대구현대미술제)가 33년이 흐른 뒤인 2012년에 다시 강정에서 부활되었다. 당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되살리면서 대구 미술의 진취성을 계승하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매년 개최되는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전국 규모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서 현대미술 발전의 모멘텀(Momentum)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 '2023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의 주제는 '다양성과 공존'이다. 과거 야외 설치작품 중심에서 디아크 1층 실내에 평면 작업을 전시할 공간을 확대함으로써 더 다채로운 작품을 볼 수 있게 된다.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현대미술의 진원지라는 역사성과, 강정이라는 장소성을 뚜렷이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문화 향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공성'을 강조한다. 달성군은 미술제 참여 작가들의 출품작 일부를 구입하여 군 청사를 비롯한 여러 공간에 배치하여 노천 미술관과 같은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공공성 증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개막 후 약 일주일 뒤에는 '2023 달성 100대 피아노' 축제가 열린다. 달성 100대 피아노 축제는 화원유원지의 사문진 나루터가 대한민국 피아노의 고향이라는 점을,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강정이 대한민국 현대미술의 전초기지였다는 역사성과 장소성을 강조한 차별화된 문화상품이다.
낙동강변의 정취와 석양이 어우러지는 환상적 분위기에서 펼쳐지는 '달성 100대 피아노'와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었던 지역의 특수성을 되짚으며 우리 도시, 우리 지역의 문화 브랜드 가치를 드높이는 대표적인 콘텐츠다. 이는 특정 공간의 가치를 넘어 대한민국의 가치 재창출이다.
주지하다시피 21세기는 감성·콘텐츠가 중시되는 문화의 시대이다. 현대사회에서 지역의 경쟁력은 문화력(문화의 힘)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앞서간 시대의 문화유산과 흔적을 의식하고, 읽어내고, 재창조하는 과정이 지속되어야 문화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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