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살률 1위의 오명 벗자

입력 2023-08-21 09:34:22 수정 2023-08-21 18:29:56

이경수 영남대 교수(대구생명의전화 이사·영남대 산학협력부총장)

이경수 영남대 의대교수
이경수 영남대 의대교수

2021년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람 수가 약 1만3천 명에 이른다. 한국의 자살률 지표는 20여 년 동안 세계 1, 2위를 차지하며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10, 20대의 자살률이 지난 20년 동안 꺾이지 않는 통계 수치를 보이며 거의 2배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남녀의 차이도 없다.

국제 비교에서도 OECD 국가의 1.5~3배에 이른다. 2002년 우리나라 자살률의 2배에 이르며 인구 10만 명당 48명이던 리투아니아도 2021년 통계에서는 우리나라의 28명보다 낮은 18명으로 떨어져, 한국이 단연 1위이다.

많은 건강 관련 지표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자살 생각, 자살 계획, 자살 시도, 자살률임은 전문 지식의 영역이 아니다. 세계 최악의 건강 지표, 그것도 다름 아닌 자살에 의한 사망이라는 점을 볼 때, 세계 최고의 교육 수준, 눈부신 경제발전과 최첨단의 보건의료 수준이 무색하고, 높은 자살률에 대한 설명을 위한 논리가 난망한 상황이다.

정부가 2004년부터 자살 예방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지만 자살률은 상향 직선을 그리고 있다.

'개인의 목숨'을 넘어 '한국 사회의 목숨'의 위태로움이 지속되고 있다. 초경쟁사회, 피로사회, 수축사회, 불안사회, 분노사회라는 사회학자들의 분석이 무색하게 이제는 그 경쟁에 의한 피로와 차별에 의하여 느끼는 개인의 분노가 불특정의 타인을 향하고 있다. 나의 생명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 분노 표출의 대상으로 보고, 행동에 옮긴다는 것은 개인을 넘어 이미 사회문제이자 공공 의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살자의 90% 이상은 지인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지만, 22%만 이를 알아채고 있다고 한다. 자살에 대한 인식의 민감도를 높이는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자살자의 유족 8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하고, 60%는 자살 생각을 하였다는 연구 결과를 볼 때, 유족에 대한 상담, 치료와 함꼐 극심한 심리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지방 시대에 지역 주도로 자살 예방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공공·민간이 모두 나서 실체적인 예방 활동을 실행하는 것이 절실하다.

자살 문제와 타인을 상대로 한 위해(危害)는 단순한 건강 문제나 개인 범죄의 수준을 넘어 국민의 생명 보호를 위한 사회문제이자, 사회 안전의 지표이다.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는 슬로건을 걸고 자살 예방 활동을 해 온 대구생명의전화가 매일신문과 공동 주관으로 9월 9일에 생명사랑 밤길걷기 행사를 개최한다. 우리나라 자살률을 기준으로 한 28.5㎞는 너무 장거리 코스인 관계로, OECD 국가의 10만 명당 자살률의 평균 수치인 11.1명을 인용하여 11.1㎞를 걷기로 하였다. 사실 28.5㎞를 걸으려면 저녁에 출발하여 새벽까지 걸어야 한다. 슬프지만 극복하여야 할 현실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민관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시도는 정책의 추진을 위한 행정 집행뿐만 아니라, 지역의 모든 민간 자원과 전문가를 조직화하고 지원하여 충분한 범위와 강한 수준의 지역사회 전체가 자살 예방 사업에 동참하는 지역사회 참여형 자살 예방 사업을 실시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 지역사회를 우리가 스스로 보듬어야 하는 절체(絶體)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