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웃는 아기의 모습에서처럼 '미술품 수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로부터 우리는 폭력을 떠올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잔혹한 폭력의 주인공에게서 예술이 주는 고양된 인격의 이미지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더러는 가장 무자비한 폭군, 부패한 독재자, 그리고 권력 찬탈자들이 훌륭한 예술품을 수집하기도 했다. 역사를 거슬러 보아도 이들은 강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화려함과 현란함이 그 특징이기에 이들의 욕구를 채워주기에 미술품만한 것도 없다.
한때 수채화 화가가 되기를 열망했던 아돌프 히틀러는 비엔나 미술 아카데미에 지원했지만 두 번이나 낙방했다. 미술가로서 좌절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히틀러는 제3제국(나치 독일)의 선전을 관장하면서 현대 미술 전체를 '타락'했다고 분류했다. 또 그는 약탈한 약 1만6천 점의 타락한(?) 작품으로 1937년에 뮌헨에서 전시회를 열어 작가들을 비하했는데, 이 전시회에는 약 200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총통이 된 후 히틀러는 나치 독일이 추구해야 할 미술 양식을 규정하고 총통박물관을 만들어 전시하고자 유럽 전체에 걸쳐 가치가 높은 예술품의 20%를 약탈하거나 헐값에 사들였다. 히틀러의 충직한 부하로서 게슈타포를 창설하고 나치 공군의 총사령관을 지낸 헤르만 괴링도 제2차대전 말까지 1천375점을 약탈해 자신의 소장품으로 삼았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을 좋아한 그의 소장품에는 보티첼리의 '어린 세례요한과 성모자'와 렘브란트의 '노인의 초상' 등이 있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나치가 타락했다고 한 피카소의 작품도 있었다.
이란의 독재자였던 레자 팔레비 전 이란 왕 부부는 피카소, 반 고흐, 모네, 르누아르, 드가, 뒤샹, 샤갈, 리히텐슈타인 등의 주요 작품을 포함해 비평가들에 의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미술의 최고 컬렉션으로 꼽히는 작품들을 수집했다. 표면적으로는 예술의 수호자인 그가 만든 비밀경찰 겸 정보기관은 왕정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하고 처형하여 국민에게는 증오와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가 축출되기 3년 전인 1976년에 앤디 워홀은 파라 팔레비 왕비의 초청을 받아 이란을 방문해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다.
필리핀의 독재자였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부인이었으며, 전설적인 신발 수집가로 유명했던 이멜다 마르코스는 피카소와 렘브란트의 그림뿐만 아니라 반 고흐, 세잔, 르누아르, 마네 등의 작품을 선별해 모았다. 마르코스 정권이 무너진 후, 이멜다의 전 개인 비서였던 빌마 바우티스타가 모네의 '수련 연못'과 '베퇴이유의 세느강' 등과 같은 작품들을 팔다 적발되기 전까지, 그 작품들은 거의 25년 동안 사라졌었다. 마르코스 가문이 수집한 작품은 200점 이상이라고 하는데, 이중 피카소의 작품이 '킹 메이커(2019)'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하는 이멜다의 소파 위에 걸려 노출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멜다 마르코스가 알면서도 미켈란젤로 작품의 위작도 수집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술품 거래를 통해 자금 세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받고 있다. '킹메이커'에서 그녀는 자신의 돈이 각기 다른 외국의 170개의 은행 계좌에 분산돼있지만 그 계좌에 접근할 수 없다고 한탄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이라는 한국어 타이틀로 서비스 중이다.
이데올로기 때문이든 아니면 자기 과시든 간에 독재자들의 취향과 도덕성은 전혀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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