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기억해 보면 어느 한 해도 태풍 없이 지나간 여름은 없었다. 한 해 평균 3개 정도의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한다고 하니, 태풍은 반드시 만나고 겪어 내야 할 한반도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인생에도 피할 수 없는 태풍이 있다. 〈맹자〉는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는 태풍의 이름을 '우환'(憂患)이라고 하였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근심(憂)과 고통(患)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인생의 태풍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할 때 옵션으로 넣어 준 것이 우환이다. 부귀한 자는 부귀한 자로서의 우환을 만나야 하며, 빈천한 자는 빈천한 자로서의 우환을 겪어야 한다. 맹자는 인생에서 만나는 우환의 태풍은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고풍(苦風)이다. 마음(心)과 뜻(志)을 고통스럽게(苦) 하는 정신적인 우환이다. 고풍의 우환은 돈과 지위를 모두 가진 사람도 피해 갈 수 없는 우환이다. 고풍의 발생 원인은 다양하다. 바라던 기대와 다른 결과에 실망하여 올 수도 있고, 관계의 파탄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어느 날 허무함과 고독감을 느끼면서 발생하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다가오기도 한다.
두 번째는 노풍(勞風)이다. 근육(筋)과 뼈(骨)를 수고롭게(勞) 하는 육체적 우환이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만나는 우환이다. 그토록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성공하였지만 노풍을 만나 한순간 무너지기도 한다. 평소 건강관리에 소홀하여 오기도 하고, 육체가 보내는 이상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방치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과도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고도 하니, 육체적 우환의 발생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 번째는 아풍(餓風)이다. 몸(體)과 피부(膚)를 굶주리게(餓) 하는 재정적 우환이다. 인생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견뎌 내기 힘든 우환이다. 사람을 잘못 만나 가진 돈을 모두 날리기도 하고, 잘못된 투자로 원금도 회수하지 못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때로는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만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일반 사람이 아풍을 만나면 자유를 잃고 속박당하기도 한다.
맹자는 인생에서 만나는 우환의 태풍을 정신(mentality), 육체(health), 재정(finance) 세 가지로 정리하면서 반전의 한마디를 던진다. 어쩌면 인생에서 만나는 태풍 덕분에 더욱 생명력을 얻을 수 있고, 더 높은 단계의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환 없이 사는 인생이 반드시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논리다. '네가 만나는 근심과 고통이 너를 살릴 것이오(生於憂患·생어우환), 네가 만나는 편안함과 즐거움이 너를 죽일 것이다(死於安樂·사어안락).' 그렇다 태풍은 인생에 틈을 만들고, 공기를 불어넣어 더욱 큰 생명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더욱 단단해진다. 폭풍이 몰고 온 바람은 대기를 순환시키고, 폭우가 내린 곳은 대지를 더욱 굳게 만든다. 태풍을 대비하고 겪어 내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고, 성찰하게 된다. 인생의 태풍은 하늘이 인간을 더욱 크게 만들고자 하는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인생 태풍 이론이다.
사마천은 궁형(宮刑)이라는 예상치 못한 태풍을 만나 〈사기〉(史記)를 완성하였고, 베토벤은 귀가 안 들리는 태풍을 만나 악성(樂聖)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전쟁과 몇 번의 재정 위기를 견뎌내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태풍은 당장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지만, 견뎌만 낸다면 축복이 되고 전설이 된다. 오늘 대한민국은 각종 태풍들을 만나고 있다. 길거리 흉기 난동, 세계대회의 부실한 준비와 처리, 학부모들의 교권 침해에 따른 교사들의 아픔 같은 사회적 태풍에서부터, 강대국들의 무역 전쟁에 따른 여파, 북한의 군사적 긴장, 불확실한 세계경제 같은 대외적 태풍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태풍도 형성, 발달, 극성, 소멸이라는 주기가 있다는 것이다. 작게는 5일, 길어야 10일이면 결국 소멸된다. 인생에서 만나는 태풍도 역시 수명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지나간다. 문제는 태풍을 통해 더욱 강해지느냐, 아니면 태풍의 눈에 빠져 태풍과 함께 사라지느냐이다. 태풍 카눈이 몰고 온 빗물이 눈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올여름에도 태풍을 기꺼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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