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글로벌 로봇 허브 도시를 꿈꾸며

입력 2023-08-09 11:04:13 수정 2023-08-09 19:17:18

박상전 경제부장
박상전 경제부장

김상배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기계공학 교수를 정확히 13년 만에 재회(?)했다. TV를 통해서다. 로봇산업의 미래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그의 모습을 우연히 브라운관에서 포착한 것이다.

김 교수를 처음 본 건 2010년 8월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MIT 공대의 한 실험실. 당시는 대구가 미래 먹거리 산업의 일환으로 로봇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이다. 기자는 관련 산업의 메카인 보스턴을 방문했고 한 지인의 소개로 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장시간에 걸쳐 생물학적 이야기만 장황하게 늘어놨다. "스피드가 빠른 치타의 공통점은 발목이 가늘다는 것입니다. 코끼리 발목 두께를 지닌 치타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사냥을 위해 빠르게 방향을 틀고 순간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발목부터 가늘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래서 빠른 이동을 요하는 동물 구조의 로봇도 얇은 발목이 선결 조건이라고 했다.

생물학 강의는 계속됐다. 이번엔 연구 중이던 도마뱀 로봇의 이론적 배경이다. "도마뱀이 수직의 벽을 오르고 천장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비결은 끈적거리면서 잘 늘어나는 발바닥의 수많은 돌기들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돌기를 발명해 벽을 기어오르는 로봇을 개발해 냈다. 현재 소방과 구조, 청소 등 다방면에서 활용 중이다.

그의 생물학 강의 의도를 뒤늦게 눈치챘다. 로봇산업은 기계공학뿐 아니라 생명공학과 직결돼 있고 그 밖의 여러 학문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 로봇사물인터넷(IoRT)과 인공지능(AI)을 도입하려면 윤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반드시 철학적 사고의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전자나 기계공학이 전부인 줄 알았던 로봇은 인류가 수학하는 모든 학문을 아우르고 있고 파급력은 생각 이상으로 커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로봇의 활용처인 1차·2차 산업 현장과 학문적 활용도를 접목하면 로봇은 6차 산업을 넘는 최첨단 산업의 면모를 갖출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해 국가로봇테스트필드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한 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어떤 비용과 편익으로 결정했는지 몰라도 현존하는 다른 산업들보다 파급력이 큰 로봇산업의 속성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공무원들의 '탁상' 행위라는 의구심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는 이번 달 말로 예정된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예타 통과의 '재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동안 보스턴의 속살을 한번 들여다보길 권한다. 이곳은 로봇 기업들이 밀집해 있으면서 산·학·연 네트워크가 이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에 필요한 지식은 근처에 위치한 MIT 공대나 하버드대 교수들이 언제든 공수해 주고, 정부의 금융 지원 아래 어떤 과업도 훌륭히 소화해 낼 수 있는 기업들이 즐비하다. 성공한 유니콘은 예비 유니콘에 투자하고 예비 유니콘은 신생 영세기업과 노하우를 공유한다. 그러면서 기업 혼자 성공하려고 발버둥 치는 곳이 아닌 성공할 때까지 기업을 도와주는 '로봇산업 인큐베이팅'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뛰어넘어 갖가지 상상력을 더한다면 대구도 홍준표 시장이 공언한 글로벌 로봇 허브 도시로서의 면모를 훌륭히 갖추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학문과 산업이 로봇산업을 통해 교류되고 열정으로 도전한다면 성공이 보장된 대구, 이달 말 예타가 결정되는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사업이 시작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