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문화는 효율 대상 아니다

입력 2023-07-19 17:30:00 수정 2023-07-19 19:53:20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요즘 대구 문화계를 보면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넋두리가 절로 나온다.

▷대구미술관장 내정 취소에 따른 법적 다툼과 소장품 위작 논란 ▷현 정부의 국정 과제인 '문화예술 허브' 사업 대상지 변경 추진에 따른 북구 주민들의 반발 ▷한동안 시끄러웠던 대구시립예술단 예술감독 공석 장기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에 대한 대구시 종교화합위원회의 '종교 편향 판정' 등 크고 작은 논란이 잇따라 생겨났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까.

10여 년 전 문화부 취재기자일 때 바라본 지역 문화예술 현장과 지금의 현장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서울을 제외하고 각종 문화 인프라나 프로그램 면에서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생길 만하다.

이는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2022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2022년 1월 기준)에 따르면 대구의 전체 문예회관(구·군 운영 시설 포함)은 11곳으로, 부산(12곳)과 인천(11곳)과 비교해 비슷한 수준이다. 인구 대비(부산 331만8천 명, 인천 296만7천 명, 대구 236만4천 명) 문예회관 수가 다른 대도시를 능가한다.

문화예술 전반을 지원하고 사업을 수행하는 문화재단의 경우도 대구는 대구문화재단을 흡수한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을 제외하고도 모두 6곳으로, 부산(3곳)이나 인천(5곳) 등보다 많다.

클래식 전용 극장인 '대구콘서트하우스'와 현재 공사가 한창인 간송미술관 등은 전국적으로 자랑거리다. 독립영화 전용관인 '오오극장'이나 지역 젊은 뮤지션들의 거점 공간인 '대구음악창작소', 예술 창작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대구예술발전소 등도 규모는 작지만 지역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키우고 있다.

각종 공연도 풍족하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2022년 공연시장 동향 총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열린 대구의 클래식 공연은 564건으로, 서울(3천385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을 비롯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대구사진비엔날레 등 전국적인 문화예술축제도 다양하다.

'근대 문화예술의 메카'라는 든든한 뿌리도 있다. 1920, 30년대 문인화의 거장인 석재 서병오, 긍석 김진만은 물론, 서양화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친 이쾌대, 이인성 등 당대에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주된 활동 무대가 대구였다. 이상화, 현진건, 박목월, 이육사, 김춘수 등이 대구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근대 문학을 이끌었다. 6·25전쟁 이후 전국의 수많은 예술가가 모인 대구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는 '문화예술인의 거리'라는 유산으로 남겨졌다.

이처럼 대구는 탄탄한 문화적 토양을 보유하고 있지만, 제대로 표출되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안타깝다. 여러 가지 원인이 얽히고설켜 있는 것 같다.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당사자는 대구시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최근 살펴보면 대구시의 관(觀)에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지역의 문화예술을 단순히 효율의 대상으로 보는지, 아니면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지. 지난해 9월 대구문화예술진흥원으로 통합할 때도 마찬가지다. 투자 마인드였는지, 효율성의 계산법이었는지 말이다.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할 수 있다.

문화계 인사들의 성토가 이어진다. 곳곳에 난 구멍들을 메우는 데 급급한 모양새다. 대구 문화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거시적인 방향성이 좀체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전창훈 기자 apolonj@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