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누구나 살아가면서 불안(不安)과 우울(憂鬱)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우울로 진료실 문을 두드린다. "왜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할까요?"라며 자책한다. '불안과 우울이 부정적인 감정이고 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것은 나쁘다'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불안과 우울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불안'은 친숙하지 않거나 위협적인 환경에 적응하고자 할 때 나타나는 기본적인 반응이다. 불안은 위험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불안은 예의주시하여 다음을 준비하라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소중한 신호이다. 다시 말해 불안은 삶을 파괴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 생존하고자 하는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 기제이다.
'우울'은 이미 바꿀 수 없는 환경에 더 이상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해주기 위한 기본적인 반응이다. 에너지가 방전(放電)되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우울은 바꿀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하고 에너지를 비축해서 다음을 준비하라는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소중한 신호이다. 우울 또한 삶을 파괴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 생존하고자 하는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 기제이다.
이렇듯 불안과 우울의 목적은 우리를 생존하게 해주는 우리의 수호자(守護者)이다. 살아가면서 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불안과 우울한 감정이 때로 우리를 흔들고 해롭게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미래에 잃을 것 같은, 또는 내가 미래에 더 가지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에 사로잡혀 있을 때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잃었을 때, 또는 더 가지지 못했음에 대한 분노로 우울에 사로잡혀 있을 때이다. 우울과 불안은 모두 상실과 관련이 있다. 돈, 권력(힘), 명예, 사랑, 건강 등 미래에 무언가 상실할 것으로 예상되는 두려움은 불안이고 무언가 상실한 것에 대한 분노는 우울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마음은 더 불안하고 우울하다. 우리는 왜 과거보다 더 불안하고 우울한가.
사람들은 대체로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욕망에 젖어 들면서 더 채우고 싶어 하고, 이를 빼앗길까 노심초사(勞心焦思)한다. 천석꾼은 천 가지 근심, 만석꾼은 만 가지 근심이라 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이미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또 더 많은 새로운 것을 소유하려 하는 일종의 '과소유(過所有) 증후군' 상태에 있다. '과소유 증후군'은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自畫像)이다. '과소유 증후군'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과 더해지면 그 욕망과 집착, 그리고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는 더욱 증폭된다.
또한, 한 치 앞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세상을 보며 불안에 빠지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분노하며 우울에 빠진다. 원래 세상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누구에게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미래와 과거를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도 일종의 '과소유'이다.
오늘날 우리가 불안과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소유'의 미래에 매몰된다면 불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과소유'의 과거에 매몰된다면 우울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래와 과거의 '과소유'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놓을 때, 불안과 우울은 우리의 수호자가 되고 선물(present) 같은 현재의 행복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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