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대구은행, 1967년 그날의 기억

입력 2023-07-09 21:28:11

김해용 논설주간
김해용 논설주간

1967년은 대한민국 발전에 변곡점이라 할 만하다. 이 해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발표됐고 포항제철 기공식이 열렸으며 현대자동차가 설립됐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1967년은 우리나라에 지방은행이 처음 설립된 해다.

이 해 1월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은행 설치를 검토·추진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지역 경제 발전 구심점으로서 지방은행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구가 가장 먼저 치고 나갔다. 지역 상공인들이 힘을 모은 끝에 이 해 10월 7일 대구은행은 창립 기념식을 열었다. 대한민국 1호 지방은행 탄생 소식에 박 대통령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축하의 의미로 그는 대구은행에 예금 가입 신청서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그렇게 대구은행 제1호 정기예금 고객이 됐다.

한때 대구에는 대구은행 말고도 은행, 종금사, 투신사, 생보사 등 금융회사가 11곳 더 있었지만 IMF 외환위기 여파를 넘지 못하고 모두 문을 닫았다. 대구은행도 몇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살아남았다. 자본금 1억5천만 원으로 시작한 대구은행은 56년이 지난 지금 납입 자본금 6천806억 원 규모 회사로 성장했다.

지역민과 애환을 함께해 온 DGB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탈바꿈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정부 방침에 맞춰 대구은행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전국 6개 지방은행 가운데 전환 자격을 갖춘 곳은 대구은행이 유일하니 이변이 없는 한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1호 타이틀도 대구은행 차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결심에는 숙고가 있었을 것이다.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과 황병우 대구은행장은 "역외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만 대구은행의 미래가 있다"는 지론을 꾸준히 펴왔다. 지역 경제 상황과 인구 감소 등을 고려할 때 지방은행 타이틀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격변하는 금융 및 산업 환경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면 현상 유지는커녕 도태될 수 있다. 시중은행이 됨으로써 대구은행은 브랜드 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지방은행인 지금도 전국 영업망 확충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지만, 시중은행 타이틀을 달면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파심도 없지 않다. 앞으로도 본사를 대구에 계속 둔다는 입장은 확고하다지만, 시중은행이 되고 나면 지역 밀착 경영에 쏟는 공이 아무래도 예전만 못하지 않을까 하는 일부 우려가 있다.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면서 브랜드 이름도 대구은행 대신 'iM뱅크'로 바꾼다고 하니 더 그렇다.

지금까지 대구 시민들과 대구은행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를 형성해 왔다. 대구은행에 대한 지역민들의 유대감은 매우 끈끈하다. 대구은행의 몇 차례 경영 위기 때마다 지역민들은 자기 일처럼 나섰다. 대구 상공인들은 외환위기 직후 대구은행 주가가 5천 원을 크게 밑도는 상황에서도 액면가 유상증자에 기꺼이 참여해 은행을 퇴출 수렁에서 건져 냈다.

대구은행 임직원들은 고객들이 대구은행을 '우리' 은행이라고 불러주면 아주 좋아한다. (시중은행인 우리은행은 '워리은행'으로 부르면 헷갈리지 않는다는 식이다) 대구 사람들로부터 '우리' 은행으로 계속 불려지기를 원한다면 대구은행은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과 공을 지역에 들여야 한다. 전국 단위 은행이 되더라도 유전자에 '대구'가 깊게 각인돼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