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 소설가
범안로는 대구 수성구 범물동에서 동구 상매동으로 이어지는 순환도로다. 도로명은 말 그대로 범물동과 안심을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지어졌을 것이다. 2001년, 범물동을 출발해 금호강 건너의 율하동을 잇는 약 6km 정도의 구간이 먼저 개통하였는데 처음 그 도로를 이용했을 때의 기분은 말 그대로 '감동적'이었다.
범안로가 생기기 전 안심 방면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꽤 멀었다. 반월당에서 버스를 타고 안심을 갈 때는 망우당공원을 지나면서부터 슬슬 지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하양에 있는 대학을 다닌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멀미를 참지 못해 반야월 어느 들판에 허리를 꺾고 있던 학생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범안로가 개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월드컵 경기장 인근을 지나다가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친구 H에게 내기를 걸었다. "10분 내로 율하역 앞까지 가면 얼마 줄래?" 범안로가 개통된 것을 모르고 있던 H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지 말라며 코웃음을 쳤다.
"여기서 10분 아니 20분 내로 율하역까지 가면 100만원 준다." H의 호기로운 선언에 신호를 받고 있던 나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재차 물었다. "정말이지? 정말 100만원 주는 거다." 약 6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H가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너 장가갈 때 줄게…."
다시 범안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H는 차창 밖으로 펼쳐진 금호강변의 풍광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봄날의 강변과 그 위로 만들어진 곧고 깨끗한 새 도로를 달리고 있던 우리는 스물 몇 살이었다. 명랑하고 친절했던 그때의 H는 차창을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대구는 길이 참 좋아."
H와 나는 아직도 함께 차를 타고 범안로 근처를 자주 오간다. H는 원래 살던 동네를 떠나 달서구 상인동으로 이사를 가버렸지만 그리 아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 세월 동안 범안로와 상인동을 연결하는 앞산터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틀 전 나와 H는 함께 차를 타고 작년에 개통한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H의 얼굴에는 오랫동안 방치된 도로의 균열 같은 주름이 이곳저곳에 패여있었다. 우리는 별다른 말도 없이 정면만 응시했다.
한 달 전 H는 지난 몇 년 간 꾸역꾸역 끌고 오던 한식당을 정리했고,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이전보다 좀 작고, 더 외곽에 있는 식당을 준비 중이다.
그날도 칠곡 어딘가에 빈 식당을 봐 둔 게 있다며 함께 나선 길이었다. '이 길 타면 왜관까지 몇 분이면 간다더라' 같은 시답잖은 소리를 해 봤지만 차 안의 무거운 공기는 좀체 가시질 않았다. 파군재 IC를 지날 즈음이었나? H가 무슨 한숨이라도 쉬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대구는… 길 하나는 참 좋아. 길 하나는…."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조두진의 인사이드 정치] 열 일 하는 한동훈 대표에게 큰 상(賞)을 주자
부동산 침체 속에서도 대구 수성구 재건축 속도…'만3' 산장맨션 안전진단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