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 과학은 뒷전…오염수 논란 제2의 광우병 사태화 우려

입력 2023-07-05 16:34:01 수정 2023-07-05 20:59:51

일본 후쿠시마 원전 내에 오염수를 저장해 놓은 저장 탱크들.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원전 내에 오염수를 저장해 놓은 저장 탱크들.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여야 간 정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권이 국민의 안전이 달린 문제를 두고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기보다 상대 비난에만 치중하는 사이 어민과 수산업자 등 불의의 피해자가 속출하는 중이다. 이미 2008년 광우병 사태,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전자파 논란 등을 겪으며 심각한 사회 분열을 경험했음에도 한국 사회가 재차 국가적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논란의 핵심과 과학적 사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논란의 핵심은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 일본은 오염수를 그대로 방류하는 게 아니라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로 모든 핵종이 기준치 이하가 될 때까지 정화·희석해 방류하겠다는 계획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지난 4일 오염수 방류 계획을 검토해 발표한 종합보고서(comprehensive report)에서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오염수 방류 시 인체와 환경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고 결론 내렸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고 물을 희석하는 공정은 새롭지 않다"며 "일정한 양의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물을 방류하는 것은 한국, 중국, 미국, 프랑스 등 많은 나라에서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당과 시민단체 일각에선 알프스로 걸러내지 못하는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를 집중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삼중수소가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게 주류 과학계의 의견이다. 일본은 삼중수소 배출기준인 1L당 6만Bq(베크럴)의 40분의 1 수준인 1천500Bq 정도로 희석, 30년에 걸쳐 방류한다는 방침이다. IAEA도 이 같은 계획을 검토하고 인정했다.

만약 오염수가 재처리 없이 한 번에 배출된다고 해도 연간 피폭량은 일반인 기준치인 1mSv(밀리시버트)의 2억8천만분의 1 수준인 0.0000000035mSv 그친다는 한국원자력학회 연구 결과도 있다. 병원에서 X-RAY 1회 촬영 시 피폭량은 최대 0.1mSv다.

아울러 한국은 2011년부터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고, 후쿠시마 근해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이 한국 연안으로 건너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게 우리 정부와 과학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측은 이제 IAEA 종합보고서를 '깡통보고서'로 규정하는 한편, UN 산하 국제기구인 IAEA 자체를 부정하고 나섰다. 이들은 IAEA 분담금을 근거로 원전 진흥이 목표인 IAEA가 일본에 유리한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근거가 희박하다. 올해 IAEA의 국가별 분담금 비율은 미국 25.1%, 중국 14.5%, 일본 7.8% 순이었다. 한국은 2.5%였다. 검증팀에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아르헨티나, 베트남, 마셜 아일랜드 등 11개국 전문가 포함됐다. 한국 검증팀 파견은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결정됐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국민 우려가 높은 가운데 27일 경남도수산안전기술원 직원이 이날 경남 통영시 통영수협 삼덕위판장에서 수거해 온 어류들을 대상으로 방사능 검출 검사를 하기 위해 수산물 방사능 분석기에 시료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국민 우려가 높은 가운데 27일 경남도수산안전기술원 직원이 이날 경남 통영시 통영수협 삼덕위판장에서 수거해 온 어류들을 대상으로 방사능 검출 검사를 하기 위해 수산물 방사능 분석기에 시료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 정쟁에 과학은 뒷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괴담이 확산하자, 당장 어민과 수산업자의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다. 급기야 '천일염 사재기' 현상까지 발생하며 일반 국민들의 시름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오염수 괴담' 선동의 진원지라는 비판을 비껴갈 수 없을 전망이다. 장외집회로 대대적인 여론전에 착수해 건강한 토론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2008년 광우병 사태와 2016년 사드 전자파 논란과 판박이라는 지적이다. '핵폐수', '방사능 테러', '일본 대변인' 등 극단적인 표현으로 국민 불안감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오염수가 알프스로 정화·희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 세계적 석학 웨이드 앨리슨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를 '돌팔이'라고 폄훼했다. 임종성 민주당 의원은 "똥을 먹을지언정 후쿠시마 오염수를 먹을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 소속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오염수 방류계획 철회 촉구 결의안을 민주당 단독으로 표결·채택하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지인과 일본 홋카이도 골프 여행을 의논하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또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식의 주장으로 이번 오염수 논란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이 야당이던 2020년 김기현 대표는 국정감사에서 "(일본이) 알프스라고 하는 다핵종제거설비를 예고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삼중수소, 트리튬이 남아있고 이것은 각종 암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제주도지사 시절인 2020년 기자회견까지 열고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강행할 경우 한일 양국 법정과 국제재판소에 제주도가 앞장서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일부 과학계 인사 역시 과거엔 오염수가 우리나라에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가 최근엔 오염수가 국내 연안에 영향을 준다며 입장을 뒤집은 것도 국내 과학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다.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냉정을 찾고 국민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극단적 정치 공방 탓에 익명을 요구한 한 과학자는 "정상 원전이 아닌 사고 원전 오염수 방류라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계획 등에 대해 신중하고 정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 국내 여론은 이 같은 분석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흥분돼 있다"며 "다른 모든 배경은 배척하고 오로지 과학적인 자세로 차분하게 일본 오염수 배출과 관련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인천지하철 1호선 부평역 북광장에서 열린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인천지하철 1호선 부평역 북광장에서 열린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