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장 자크 루소는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에서 자연은 그 배음들을 감추고 가락을 야기한다고 했다.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은 부권의 권위를 피해 도시 아테네에서 도망쳐 나온 연인들이 한여름 밤의 숲에서 일으키는 사건들로 극을 구성한다.
셰익스피어는 숲을 무대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허미아는 부친이 정해 준 드미트리어스를 거부하고 사랑하는 남자 라이샌더와 숲으로 도망친다. 드미트리어스는 허미아의 뒤를 따라 숲으로 쫓아가고 드미트리우스를 짝사랑하는 헬레나도 숲으로 들어간다. 숲에는 요정의 왕 오베론과 왕비 티타니아가 살고 있다. 여기에 사랑의 묘약을 가진 요정 퍽이 등장하여 복잡한 사건이 전개된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곳곳에서 음악적 모티프를 확장하고 심화한다. 도시는 시각 작용이 강화되는 곳이지만 밤의 숲은 시각이 약화되는 대신 청각 작용을 강화한다. 도시는 남성이 시각 권력의 주체가 되지만 숲은 여성이 청각 권력의 주체가 된다. 시각성은 즉물적이고 일차원적이지만 청각성은 내면적이고 정신적이다. 도시는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소음으로 가득하지만, 숲은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같은 심신을 정화하는 자연의 소리로 극 중에서 통주저음을 담당하며 도시와 대위적 의미망을 형성한다. 아테네가 질서의 아폴론적 세계라면, 밤의 숲은 어둠과 도취의 디오니소스적인 세계이다. 이 두 세계는 대립하고 충돌하며 보다 나은 세계로 발전해나간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대위적 기법으로 한여름 밤의 숲을 의미화한다.
연인들이 숲으로 피신해 일으키는 사건은 선율처럼 구성되며 선율은 하나의 중요한 문학적 모티프로 변형될 수 있다. 이 테마는 반복하고 변화를 겪으며 발전해나간다. 이것은 등장인물의 수만큼 여러 성부를 이루며 당대 유행하던 다성음악의 구조를 나타낸다. 연인들은 숲이 만들어내는 통주저음 위에서 자유로운 리듬과 선율이 되어 사건을 일으키고 불협화에서 협화음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질서로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연인들이 지나간 숲속의 길은 음악이 지나간 시간의 길이며 연인들의 격렬한 운동 리듬과 신체운동은 상행하고 하행하는 선율이 된다. 길의 역동성이 문학적 의미를 형성하듯 선율의 역동성은 음악적 의미를 형성한다.
귀의 공간 경험은 관계 경험이다. 숲에서 청각적 요소가 사라진다면 실재하는 숲이 되기 어렵다. 보름달이 사라진 숲 또한 의미의 공간이 되기가 어렵다. 어둠의 세계는 자연의 소리와 음악이 있어서 상징체계를 갖춘 의미의 세계가 될 수 있었다.
숲은 또 다른 음악 언어인 쉼을 나타낸다. 생존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도시에서 숲으로의 도피는 휴식을 의미한다. 숲은 휴식을 통해 복잡한 문제를 재배치하고 해결해서 조화로운 결말로 이끈다.
도시와 숲, 부권의 권위와 대항하는 연인들, 보이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 낮의 세계와 밤의 세계 등 대위적 갈등 구도는 완성을 향한 요구였다. 셰익스피어는 문학과 음악의 융합을 통해 르네상스 문학이 추구하던 그리스적 이상을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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