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옛날 과자와 선관위

입력 2023-06-08 18:06:28 수정 2023-06-08 18:13:49

김태진 사회부 차장
김태진 사회부 차장

당숙에겐 좌변기 공포증이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좌변기를 처음 마주한 그의 당혹감은 꽤 오래 이어졌고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쪼그려 앉아 볼일 보던 재래식 화장실을 반백 년 넘게 쓰던 습성으로 각인된 메커니즘이었다. 겨울에도 따뜻하게 집 안에서 볼일을 볼 수 있게 해드리겠다는 자식들의 효도 선물은 장식용이 됐다. 좌변기가 있는 화장실로 향하며 그가 한 말은 "하던 대로 할란다"였다.

하던 대로 하는 습관을 깨는 건 쉽지 않다. 사서 불편할 필요는 없다. 억지로라도 바꾸는 때가 있다. 새로운 문물이 들어와 무지를 자각하거나 불합리성이 드러났을 때다. 구한말 가로등을 보며 밤에도 활동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상투를 트는 게 이(sucking lice)를 키우는 것임을 알고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 단적인 예다.

지난달 12일 경북 영양산나물축제장을 찾아 KBS 예능프로그램
지난달 12일 경북 영양산나물축제장을 찾아 KBS 예능프로그램 '1박 2일' 촬영을 진행한 방송인 김종민 씨와 유선호 씨가 영양군에서 방송 내 임무를 수행하고 이동하고 있는 모습. 김영진 기자

경북 영양이 옛날 과자 탓에 쑥대밭이 됐다.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영양이 주 무대가 되면서 마침 그 기간에 있던 산나물축제도 소개됐는데 공교롭게도 출연자들이 축제장에서 산 씨앗강정, '센베이'(煎餠) 등 옛날과자가 터무니없이 비쌌던 게 탈이었다. 세 봉지에 14만 원이라는 가격이 노출되면서 영양은 순식간에 관광객의 뒤통수를 후리는 몹쓸 동네가 됐다.

'충TV'처럼 발랄한 유튜브를 보유하지 못한 시군 규모 기초자치단체의 한 줄기 빛은 단연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 등의 시사 프로그램에 나가지만 않으면 노출이 곧 홍보다. 몇 년 전 홍보 담당자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옮겨 보자.

"자연스러운 PPL이 가능한 '1박 2일'이나 '전국노래자랑'을 섭외하면 그만큼 좋은 게 없는데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전국노래자랑'은 유명 의사에게 시술을 받으려 대기하는 것처럼 예약이 밀려 있고, '1박 2일'은 섭외 자체가 안 된다."

이런 마당에 축제장 상인들이 '1박 2일' 제작진의 촬영 소식에 갑자기 가격을 높였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해 오던 대로 했을 것이다. 어떤 물품을 100g당 4천499원에 팔든 4만4천 원에 팔든 상인이 감당할 부분이다. 그러나 축제장을 돌며 한철 장사를 하는 이들은 다소 별난 구석이 있다. 그렇기에 고객 만족도를 확인하는 '미스터리 쇼퍼', 객관적인 외부의 시선이 없었던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축제에 사람들이 몰려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강박에 개선점을 즉각 읽어내지도, 반영하지도 못한 것으로 풀이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대학생단체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신전대협) 회원들이 6일 오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간부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노태악 위원장과 김필곤 상임위원장의 사퇴와 외부 감사 수용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대학생단체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신전대협) 회원들이 6일 오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간부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노태악 위원장과 김필곤 상임위원장의 사퇴와 외부 감사 수용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강하게 불거진 선거관리위원회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치적 독립성을 강조하다 보니 외부의 감시가 느슨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건 선관위가 여론에 버티는 중이라는 거다.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으로 선관위가 직무감찰을 받지 않았던 것이 헌법적 관행"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논리를 폈다. 관행, 즉 '하던 대로'를 당연시하며 요구한다.

국민적 공분은 폭발 직전이다. '누구 자식 누구'라는 걸 알리고 진행한 경력 직원 채용은 일부 강성 노조의 채용 세습과 닮았다. 선관위가 사기업인가. 그럼에도 감사원의 감사를 부분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오히려 자체 감사로 눙치려 든다. 잘못한 게 없는데 감사를 받으라 한다면 모함이고 능욕이다. 스스로 잘못을 인지하고 바꾸려 한다면 그건 쇄신의 길이다. 내부 논의를 거쳐 수용 여부를 정하겠다 했다. 여론을 읽는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는 증거로 비칠 뿐이다. 아직 멀었다는 말이 혀끝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