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문영호(㈜천신CSK 이사) 씨의 선배 고 황규인 형사

입력 2023-06-04 14:10:31 수정 2023-06-04 17:52:41

"'소매치기범 검거의 대가'…일중독증 환자였던 형, 왜 자신의 건강은 챙기지 못했나요"

2003년 한 뉴스 채널의 보도에서 인터뷰 중인 고 황규인 형사. 문영호 씨 제공.
2003년 한 뉴스 채널의 보도에서 인터뷰 중인 고 황규인 형사. 문영호 씨 제공.

과거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그 경험을 책으로 펴낸 한 작가를 만난 일이 있었다. 그는 세계 각국을 여행할 때 강·절도 피해를 직접 당했던 일화부터 불안한 밤거리 문화 등에 대한 소상하고 진지한 얘기를 들려줬었다. 특히 그가 가장 힘주어 강조한 대목은 "대한민국 치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대한민국처럼 밤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는 부분이었다.

경찰관은 업무 특성상 밤낮이 바뀐 교대근무와 참혹한 사건 현장을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데다 밤마다 반복되는 주취자와 불법행위자 등 공권력을 업신여기는 부류와의 씨름으로 인해 정말 힘들다. 심지어 걸핏하면 이들에게 욕을 먹기 일쑤고, 때로는 폭행당하는 등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세월은 유수와 같고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더니 야전소총수(경찰서 강력계 형사를 일컫는 경찰 속어)시절 동료들과 사명감과 열정, 책임감, 자부심으로 무장한 채 서울 송파구 가락동농수산물시장 건너편 버스정류장을 무대로 활동하던 소매치기 조직을 일망타진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그 때 그 시절은 지금처럼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과학적으로 범인을 잡는 시대가 아니라 발품을 파는 '아날로그 형사'였다. 몸은 힘들고 고달팠지만 따뜻한 정과 의리가 있어 정말 좋았다.

과거에는 버스나 재래시장, 영화관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꼭 소매치기범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처럼 옛날에나 유행했던 구닥다리 범죄로 생각했던 소매치기범죄가 지금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소매치기 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이 있다. 과거 전국 소매치기범들의 저승사자로 통했던 황규인 형사다. 그는 소매치기범 검거 전문 형사로서 30년 외길을 걸었다. 전국의 소매치기범들이 퇴직하기를 기다린 사람도 바로 그였다. 그가 발령받아 가는 경찰서마다 소매치기 사건이 눈에 띄게 줄어든 데는 소매치기범들 사이에 소문나 있는 그의 이름값이 한몫을 톡톡히 했다. 다시 말해 '소매치기범 검거의 대가'였다.

범죄자를 잡는 숙명을 타고 났다고 말하던 형. 사람들이 간혹 비웃곤 하는 '정의'라는 단어를 후배들에게 주입시키던 형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본다. 그는 살아생전 "박봉과 고된 업무, 승진상의 어려움을 이겨온 것은 치안의 최선봉에 서 있다는 사명감과 책임감, '형사'란 직업의 자부심 때문이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또 "정년퇴직하는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한 진정한 형사였다고 후배들에게 기억되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누적된 업무상 과로와 극심한 스트레스로 지병이 급격하게 악화돼 그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대한민국 강력형사를 뒤로하고 이른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가 세상을 등지고 나서 소매치기 조직들이 자축연을 열었다는 소식에 우리는 울분을 토하기도 했었다.

그는 경찰은 승진보다 범죄자를 많이 잡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또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해야 한다며 누가 알아 주지 않아도 황소처럼 걸어가라고 했다. 그는 범인검거 유공 표창을 70여회나 받았고, 소매치기 조직 30여개를 적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병이 크게 악화되자 병든 육신이 조직과 동료들에게 누가 되고 짐이 된다며 명예퇴직을 자청했다. 죽도록 일만 하더니 바보같이 죽고 말았다. 일 중독증 환자였던 형, 나는 그런 형에게 묻고 싶다. 왜 자신의 건강은 챙기지 못했냐고 말이다.

한 평생 야전소총수로 오로지 국가와 국민, 약자를 위해 청춘을 보낸 규인이 형, 하늘나라에선 일 중독증환자로 힘들게 살지 말고 편안하게 행복하게 지내세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치안의 최일선 강력형사로 사명감과 열정, 책임감, 강력형사라는 자부심 하나로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사건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뜨거운 삶을 살다간 형이 그립다. 그의 평안과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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