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흑인 인어공주

입력 2023-05-31 20:04:10 수정 2023-06-02 17:03:46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미국의 한 극장에서 자녀와 함께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를 관람하던 흑인 부모와 백인 부모가 싸우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다. 싸움은 영화를 보던 백인 어린이가 흑인 인어공주를 향해 "괴물 같다"고 혼잣말을 했는데, 앞자리에 앉아 있던 흑인 부모가 거세게 항의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부모들의 싸움을 두고 우리나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인종차별이다' '여주인공이 흑인임을 미리 알리지 않은 부모의 잘못이다' 등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백인 아이가 피부색 때문에 '괴물 같다'고 말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에 흑인 인구가 적은 것도 아니고, '흑인=괴물'이라고 생각했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영화에 대한 느낌이 좋지 않았던 것 아닐까 싶다. 배우들의 떨어지는 연기력, 뻔한 장면들…. 말하자면 백인 아이의 애초 기대(아름다운 인어공주)를 저버렸다는 점보다는 영화에 다른 '매력'이 적었기 때문 아닐까 싶은 것이다. 피부색 때문에 아이가 여주인공을 괴물로 여겼다고 가정하면, 초록색 피부에 기이한 외모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슈렉'과 '아바타'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큰 인기를 끄는 흑인 배우들을 설명하기 어렵다.

설령 아이가 '공주가 예쁘지 않아서' 불만을 터뜨렸다고 해도 그것을 곧 인종차별로 보는 것도 합당치 않다. 게다가 아이들 눈에 반인반어(半人半魚)는 괴물로 보일 수 있다. 아이는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부모와 한국 네티즌들이 거기에 정치적 해석을 덧붙여 인종차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쁘지 않은 건 예쁘지 않은 것이고, 더러운 건 더러운 것이다. 가령, 어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여행 와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시끄럽게 떠들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린다고 해서 그것을 '인종차별'로 연결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 그런 경우를 당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정치 과잉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갑질'과 '차별' 논란도 그런 면이 있다. 상사의 정당한 업무 지시, 정당한 처벌, 심지어 구애 거절까지 '갑질'과 '차별'로 인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명분 아래 오히려 사회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여담인데, 영화 '인어공주'는 해피엔딩이지만, 원작인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는 주인공이 부모 말 안 듣고 사랑 찾는다며 싸돌아 다니다가 망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