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을 제대로 깔아야 한다. 그래야 제 실력이 나온다. 한데 우리 축구판은 그렇지 못하다. 프로축구 K리그가 일찌감치 개막했지만 초반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잔디가 말썽이다. 국내 구장의 잔디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는 하루이틀 나온 게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다르다. 너도나도 불만을 드러내면서 그 논란이 쉽게 식지 않을 조짐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상태가 논란을 키웠다. 지난 3일 이곳에서 열린 FC서울과 김천 상무의 경기 때 '난리'가 났다. 잔디는 움푹 파였다. 선수들은 뛰다가 잔디에 걸려 발목을 접질렸다. 공은 통통 튀어 제대로 몰기도, 정확히 패스하기도 어려웠다. 웃기려고 한 것이었으면 성공. 하지만 정색하고 전력을 다해야 할 진검승부였다는 게 문제다.
서울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출신 스타 제시 린가드가 뛴다. 3일 경기에 나섰던 린가드도 잔디 때문에 애를 먹었다. 잔디에 걸려 넘어진 뒤 고통을 호소했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경기 후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다 잔디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세계적으로 망신살이 뻗쳤다는 말이 나왔다.
경기 내용은 참담했다. 답답한 경기 속에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났다. 관중뿐 아니라 두 팀 모두 아쉬움과 불만을 나타냈다. 정정용 김천 감독은 "준비했던 후방 빌드업(공격 전개 작업)을 전혀 할 수 없었다. 두 팀 모두 피해자"라고 했다. 서울 정승원은 양쪽 발목이 모두 돌아갔다고 했다. 전술은커녕 안전하게만 차자고 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한국 축구의 '성지'로 불린다. 하지만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한국의 경기는 다른 데서 열린다. 20일 오만전은 고양종합운동장, 25일 요르단과의 경기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맨땅에서 축구를 하니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하던 건 옛말. 하지만 경기장에 깔아준 멍석이 제대로 된 게 아니다. 잔디 상태가 엉망인 건 한두 곳이 아니다. 대표팀 수장 홍명보 감독도 입을 댔다. 그는 "축구가 기술적, 전술적으로 변한 요즘은 잔디 상태가 정말 중요하다. 좋은 잔디에서 경기를 하면 더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올해 K리그는 예년보다 2~3주 일찍 개막했다. FIFA 클럽월드컵과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아시안컵 등을 고려해 짠 일정. 2~3월 한국의 기후 데이터도 조사해 결정한 일이란다. 그런데 3월 초까지 추위가 이어져 대부분 경기장의 잔디 상태가 좋지 않다. 그런데도 경기를 계속 치르니 더 훼손된다. 악순환이다.
일정은 그렇게 짤 수 있다. 그게 근본 문제가 아니다. 잔디 관련 시설과 관리 시스템, 인력과 투자가 미흡하다는 게 핵심. 우리나라는 유럽보다 날씨 변화가 심하다. 겨울철 한파, 여름철 장마로 잔디를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한다. 유럽 경기에서 볼 법한, '양탄자' 같은 잔디를 가꾸기 힘들다는 뜻. 그런 만큼 더욱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잔디가 안 좋은데 제대로 된 경기가 나올 리 없다. 선수들이 다치고, 팬들은 경기력에 실망하게 된다. 선수와 팬 모두 잃는 셈. 잔디는 안 좋아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니다. 축구라는 스포츠, 한국 대표팀의 경쟁력과도 직결된 문제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앞장서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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