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잠시 둘러본 일본 사회와 사람들

입력 2023-05-30 20:13:39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로 시끄러운 시점 일본을 잠시 다녀왔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급할 것도 없어 느린 열차로 오사카 등지를 둘러보았다. 국내에선 대통령의 대일 협상을 굴욕 외교라고 비판하는 시기여서 내심 미안하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일본을 돌아본 소감은 우리도 이제 일본에 대해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해야 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도 이제 과거의 우리가 아니다. 그간 우리 국력은 상승하였고 일본은 하향하여 대등한 입장이 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을 거친 일본의 일인당 국민 소득은 우리와 비슷하다. 이번 여행을 같이한 동료 교수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자부심을 가졌다. 우리는 과거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반일 적개심이 강한 반면 그들 앞에 서면 작아지는 모순된 의식을 가졌다. 오늘도 세계인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인정하는데 정작 우리는 자조(自嘲)적인 의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여행길에 제일 중요한 것이 식사 문제다. 과거 10여 년 전 일본에만 가면 배가 고팠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식당에 가면 일본식 반찬 하나하나가 돈으로 계산되던 시절이다. 한국에서는 백반만 시켜도 모든 반찬이 무료인데 일본의 미소 된장국, 조개국마저 가격이 엄청났다. 일본의 생선회값은 한국의 몇 배가 넘었다. 다행히 이번 일본 여행에서는 식사비도 호텔 비용도 한국과 비슷해졌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의 음식값이 대폭 올랐기 때문일까. 일본 유명 관광지 찻값은 한국보다 저렴했다. 일본식 선술집에서는 안줏값만 받고 술을 무제한 제공하여 가격이 훨씬 싼 편이었다. 일본의 일인당 소득이 우리와 비슷한 결과이다. 최근 한국 청년들이 일본을 자주 찾는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일본에는 한국에 비해 불편한 시설도 많다. 일본의 화장실은 어딜 가나 좁아 답답했으며 도로 역시 매우 좁아 차량 두 대가 겨우 교행할 정도다. 이코노미급 호텔의 샤워실은 숨 막힐 정도로 좁아 돌아서기도 힘들다. 이어령 선생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생각난다. 귀국 후 청송 주왕산 계곡 트레킹을 다녀왔다. 숲속의 간이 화장실마저 일본 화장실보다 넓어 속이 다 시원하였다. 일본 마트나 백화점에 들러도 살 만한 물건은 찾기 어렵다. 동전 크기의 파스만이 유독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새로 나온 근육통 완화 파스는 저녁에 붙이자마자 떨어져 버렸다. 일본의 유명한 코끼리 밥솥은 한국 제품에 밀린 지 오래다. 우리 전자제품은 일본 소니를 앞서고 전기자동차마저 일본을 앞질러 버렸다.

일본 교수 2명이 우리를 친절히 안내하였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많은 일본인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보다 화장을 적게 한 수수한 일본 여성들, 그들의 드러난 덧니, 우리보다 신장이 작은 일본인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우리나라보다 많은 외국 관광객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비해 의상이 화려하고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녀야 인정받는 나라에 살고 있다. 우리의 체면과 형식주의 문화가 초래한 비극이다. 일본 사회에 자리 잡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의식이나 친절성만큼은 우리가 시급히 벤치마킹할 덕목이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일본 안경 수리점에 안경을 맡겼다. 나사못을 교체해 주고 비용은 결코 받지 않았다. 우리 차가 떠날 때까지 허리를 90도 굽혀 인사하던 점원이 있었다. 그것이 '혼네'(속마음)인지, '다테마에'(겉 태도)인지 알 수 없지만 따질 필요는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치 지도자들보다 국민들 평균적 도덕성이 우리보다 앞서 있었다.

우리도 이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세계 7위의 인공위성 선도국, 세계 6위의 군사 강국이 되었다. K팝이나 음식 문화 등 자랑거리가 많다. 우리의 낙후된 정치이지만 일본의 계파 정치보다는 훨씬 앞섰다. 우리 대통령도, 국민도 일본에 대해 당당한 외교가 필요하다. 우리의 과제는 이 땅의 일부 기성세대의 '조센징은 안 된다'는 자조적 의식부터 버려야 한다. 일본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한 일본 극우의 '식민지 근대화론'의 망령은 잘라 버려야 한다. 우리가 이웃 일본과 친선을 위해 국교 재개를 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의 국력만큼이라도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당당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우리 국민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