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환절기를 건너며

입력 2023-05-26 13:56:59 수정 2023-05-29 08:04:39

박경혜 수필가

박경혜 수필가
박경혜 수필가

'경계성 종양이 있대.'

건강검진을 한다던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놀란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지만 걸까 말까 망설이며 만지작거리고만 있다. 문자로 알려온 걸 보면 지금은 통화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자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경계성 종양'을 검색해본다. '양성과 악성의 경계에 있는 종양으로 암에 해당하지 않는 상대'라고 나온다. 일단 암이 아니라니 한시름 놓는다. 암이라 하면 무서운 생각이 먼저 든다. 싸우기 버거운 존재, 존엄한 삶을 망가뜨리는 악질 정도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을 의심하지 않고 살았다. 주변에 심각한 병으로 고생한 사람이 없는 것도 건강을 자신하는 데 한 몫 했는지 모른다. 건강하던 친구의 몸에 갑자기 적신호가 왔다니 종일 마음이 무겁다. 저녁때가 돼서야 전화가 왔다. 친구의 목소리가 의외로 밝다. 주기적으로 검사하며 잘 지켜보면 되니 괜찮다는 것이다. 다행이라 대답하며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경계는 늘 위태롭고 불안한 법이다. 괜찮다던 말과는 달리 친구는 자주 기분이 가라앉는 듯하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일상이 자꾸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니 그 심경을 알 듯도 모를 듯도 하지만 어쭙잖은 위로는 하지 않으리. 내가 겪는 고통이 아니니 그 깊이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저 그가 잠들지 못하는 깊은 밤 소리 죽여 문자를 주고받는 일이 내가 해주는 전부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말은 참 의미 없다. 특히 상대의 아픔을 일반화시켜 버리면 서로 막막해지고 만다. 몸의 증상이 비슷하더라도 정신적 충격을 더 받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귀 기울여 말을 들어주고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 그게 위로가 될까 싶지만 나는 그것밖에 해줄 일이 없다.

대신 TV에서 들은 어느 의사의 말을 친구에게 전한다. 병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다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어려운 일이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게 약을 쓰는 것보다 더 치유에 도움이 된다던. 친구의 불면이 길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플라시보(위약) 효과도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 배가 아플 때 엄마 손은 약손이라며 만져주면 통증이 사라지던 경험은 대부분 해봤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안정되면 병도 따라 호전된다는 다양한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플라시보라는 말은 '내가 기쁘게 해주겠다'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다고 하니 참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말이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환절기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기온 변화가 심한 날씨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건강을 잃지 않는 법이다. 친구도 중년과 노년 사이의 환절기를 잘 지나기를, 그래서 그 환한 미소를 곧 되찾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