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소(王昭). 왕건의 넷째 아들의 휘(諱), 즉 생전 이름이다. 고려 4대 임금 광종이라 부른다. 한때 광덕(光德, 949년-953년)과 준풍(峻豊, 960년-963년)이라는 독자 연호를 쓸 만큼 자주성이 강했다. 그가 우리 역사에 남긴 과업 2개를 고르라면 먼저 공무원 임용고시를 꼽는다. 당나라 붕괴 뒤, 혼란의 5대10국 시대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 958년 과거제도를 도입했다.
문벌이 아닌 능력으로 시험을 치러 관리가 되는 시대를 열었다. 광종의 잔영은 논산시 은진면 관촉사에도 어른거린다. 2018년 3월 국보 323호로 지정된 '은진미륵'은 그의 명으로 만들었다. 높이 18.12m로 국내 불상유물 가운데 가장 크다. 미륵불은 부처 열반 56억7천만년 뒤에 나타나는 미래불이다. 태양계와 지구 나이가 46억 년쯤 되니까...
은진미륵의 신체비례나 얼굴 생김은 인류가 오랜 기간 다듬어온 구상미술보다 20세기 추상미술에 가깝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불상의 기원을 찾아가 본다.
◆알렉산더 페르시아 원정 출정식 가진 올림포스 산
그리스 신화의 본고장 올림포스산으로 가보자. 높이 2917m 미티카스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첩첩산중 하늘나라에 제우스를 비롯한 12명의 신들이 산다는 게 그리스 신화의 골자다. 산이 깊어 이민족 침략시 독립군의 항쟁중심지였다. 올림포스산 북쪽을 마케도니아라고 부른다. 정복왕 알렉산더의 고국이다. 올림포스산과 마케도니아의 중심도시 테살로니키 중간에 디온이 자리한다.
지금은 극장 페허등 일부 유적 잔해가 풀숲에 가려 있는 한적한 모습이지만, B.C334년 이곳에서 인류역사가 새로 쓰였다.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더(재위 B.C336년-B.C323년)가 당대 세계 최대 영토의 페르시아 제국 침략 출정식을 가진 장소다. 마케도니아군 1만 3천명을 주축으로 한 보병 4만8천1백명, 정예 마케도니아 기병 5천1백명 중심의 기병 6천명... 많은 학자들과 심포지온(연회)를 주도할 여성 도우미 헤타이라까지 뒤따랐다.
◆중앙아시아와 간다라에 그리스 박트리아 왕조 수립
에게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좁은 바다 마르마라해의 에게해 쪽 입구를 다다넬즈 해협이라 부른다. 해협을 건너면 '트로이 전쟁'의 트로이가 나온다. 알렉산더는 당시 바닷가 트로이에 상륙해 아킬레스 무덤을 참배한다. 트로이에는 지금도 그리스 로마시대 극장이 남아 있다. 트로이를 지나 그라니코스강 전투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처음 만난 알렉산더. 투구 위로 도끼를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기며 승리를 거둔다.
B.C333년 튀르키예 남부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를 무찌른다. 이수스는 이번 튀르키예 강진 때 한국 구호대가 활동한 안타키아 근처다. 페르시아 해군 거점이던 레바논 땅 페니키아 도시 티레의 강력한 저항을 물리치고, 이집트를 무혈점령한다. 이어 B.C331년 티그리스강 유역 과가멜라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를 궤멸시킨다. 다리우스 3세가 부하에게 암살당하면서 페르시아 제국은 무너진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속국이던 중앙아시아 지역 소그디아나(우즈베키스탄)까지 내달린다. 여기서 현지 성주의 딸 록사나와 결혼한 알렉산더는 아프가니스탄과 인더스강 유역 파키스탄까지 정복하고 말발굽을 돌린다. B.C323년 티그리스 강변의 역사고도 바빌론에서 심포지온(회식) 도중 쓰러져 10일 만에 33살로 급사한 알렉산더. 제국은 부하들 손에 나뉜다.
소그디아나 일대는 셀레우코스 장군이 세운 왕조에 속했다. 여기에 B.C 245년 그리스 총독 디오도투스가 독립왕국을 세운다. 박트리아. 중국 역사에서 대하국(大夏國)으로 불린다. 흔히 '간다라'라고 부르는 땅이다.
◆훈(흉노)에 밀린 월지, 박트리아 정복해 쿠샨 왕조 설립
중국 역사로 눈을 돌려보자. B.C3세기 이후 몽골초원을 기반으로 세를 떨친 훈(Hun, 흉노)이 남진하며 진나라와 한나라를 압박한다. 아울러 오늘날 신장 위구르 자치주 타클라마칸 사막의 타림분지에 살던 월지(月氏)를 밀어낸다. 월지는 서쪽으로 이동해 그리스 왕국 박트리아를 붕괴시킨다. 월지의 5부족 가운데 귀상(貴相)족을 쿠샨(Kushan)이라 부른다.
쿠샨은 인더스강 너머 펀잡을 정복하며 서북 인도까지 장악해 쿠샨 제국을 세운다. 사막에 살던 월지는 문화가 빈약했으므로 인도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인다. 인도 문화는 불교다. 그리스 문화는 문자와 조각이다. 불교와 그리스 조각이 만나 인류 역사에 새로운 예술 장르를 빚어낸다. 간다라 불상의 탄생이다.
부처님이 열반한 불멸기원(佛滅紀元) B.C 544년 이후 불교도들은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 부처님 상징은 탑이나 보좌였다. 쿠샨 제국이 신을 인간 모습으로 빚는 그리스 조각을 배워 불상을 처음 만든 것이다.
◆쿠산 왕조, 그리스와 인도 문화 융합해 간다라 불상 창조
간다라 불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파키스탄의 대도시 라호르로 가보자. 인도와 국경을 이룬다. 라호르 국립박물관은 인상적으로 고풍스런 건물 외관만큼이나 독보적인 유물로 탐방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보리수 아래 「단식하는 부처(Fasting Buddha)」. 고행으로 앙상해진 뼈와 살가죽 사이로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해부학 교과서를 보듯 사실적인 인체다. 부처의 모습을 보자, 갸름한 얼굴에 곱슬머리, 날카롭게 솟은 코, 지그시 감듯 살짝 아래로 향한 큰 눈... 익숙하게 보아오던 동양인이 아니라 서양인 생김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맥락은 표정이다. 선정인(禪定印) 손 모양의 결가부좌, 번뇌를 딛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깊은 사색에 잠긴 얼굴에는 고통을 깨달음으로 승화시키는 정신세계가 피어오른다.
1-3세기 만들어진 간다라 불상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프랑스 파리 기메 박물관을 비롯해 지구촌 주요 박물관으로 흩어진 간다라 불상이 간직한 명상, 해탈의 숭고미다.
◆간다라 불상의 원조는 그리스 고전기 '숭고미' 아폴론 조각
그리스 조각의 본고장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으로 가보자. 디아두메노스(Diadumenos). 우리말로 옮기면 '승리의 머리띠를 매는 남자'. 올림픽 달리기나 격투 경기에서 승리한 뒤, 승리 상징의 니케 여신 머리띠를 매는 순간을 담았다. B.C5세기 그리스 고전기 조각을 로마시대 복제한 작품이다.
격한 운동을 막 끝낸 뒤 드러나기 마련인 육체적 고통이 오간 데 없다. 감각의 세계에서 느끼는 모든 고통을 뒤로 물리고, 감성에서 벗어난 오성의 사색을 담아낸다. 희노애락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숭고한 정신의 표현. 이것이 B.C5세기 완성된 그리스 고전기 조각의 진면모다. 아테네인들은 B.C6세기 말 인체 해부를 통해 사실에 입각한 인체 구조를 조각에 반영했다.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창조해낸 비결이다. 고전기 조각철학과 기법은 태양신 아폴론을 비롯한 주요 신들 조각에 적용됐다. 그리스의 조각 철학은 부처님 고행과 해탈의 철학에 잘 어울렸다. 불교를 채택한 쿠샨 제국 월지족이 그리스계 박트리아 조각을 받아들인 이유다.
◆티벳계 저족의 전진왕 부견,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에 불상 전파
간다라에서 탄생한 불상 조각은 이후 불교 발상지 인도는 물론 실크로드를 타고 기마민족의 손을 거쳐 중국과 한반도로 퍼진다. 불상 현지화라는 문화접변(文化接變, Acculturation)을 통해 그리스인 얼굴이 동양인 얼굴로 바뀌었지만, 해탈 표정의 숭고미는 그대로다.
티벳 출신 저족이 세운 전진(前秦, 351년-394년)의 3대왕 부견(苻堅, 재위 357년-385년)이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광개토대왕 큰아버지)에게 불경과 불상을 전해준다. 이후 고구려와 백제, 신라, 고려를 관통하며 한국 역사에 남은 정제된 표정과 조형미의 불상은 이렇게 태어났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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