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달라진 게 없는 '가족돌봄청년' 문제

입력 2023-05-16 15:51:30 수정 2023-05-16 19:18:17

매일신문 한소연 기자

한소연 사회부 기자
한소연 사회부 기자

때가 되면 찾아오는 계절처럼 어떤 시기가 되면 물큰 생각나는 일들이 있다. 환희를 느꼈기 때문이든 가슴에 사무치는 비애를 느꼈기 때문이든 특정한 감상에 의해 기억에 각인된 탓일 것이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데서 차마 그칠 수만은 없는 일도 있다.

모든 일은 이맘때쯤 일어났다. 22세 청년은 2021년 4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원비가 부담된다는 이유로 퇴원 절차를 밟았고, 그의 아버지는 방치돼 영양실조 등으로 한 달 만인 5월에 사망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22년 3월 31일, '간병 살인자' 22세 청년은 징역 4년 형을 선고받기에 이른다. 선고 다음 달인 4월, 정부는 각 지방자치단체별 실태조사를 지시했다.

대구시에는 40명의 가족돌봄청년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각 구청이 확인해 보니 진짜 가족돌봄청년은 2명뿐이었다. 실태조사가 자발적 참여로만 이뤄지다 보니 거짓 응답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대구시는 답했다.

전문가는 반대의 상황을 지적했다. 돌봄의 과중과 그로 인한 고통은 은연중에 찾아오기 때문에 불편을 자각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자신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응답으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실태조사의 결실은 그 방식이 잘못됐다는 사실뿐이었다. 절차가 부실하니 결과가 부적확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돌봄청년의 특수성을 고려한 지원책도 전무했다. 대구시가 가족돌봄청년으로 확인한 두 명마저 기존에 지원을 받는 수급자거나, 수급자가 아니면 기존 기초수급 제도에 편입시키는 조치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그것 외에 별다른 지원책은 없느냐'고 물었지만, '없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서울시는 달랐다. 정부 조치와 별개로 지자체 차원에서 선제적인 발굴과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수급 제도 편입에 더해 '심리정서지원비' '문화지원비' 등 1인당 130만 원 내의 자기돌봄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자조 모임, 소통 시간 마련 등 사후 관리 프로그램도 있었다. '미래청년기획단'이라는 담당 부처까지 마련했다. 지자체가 이 사안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서울시는 '가족돌봄청년'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고 지금도 그 대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구에서 발생한 사건인데도 대구시는 다른 지자체보다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정부 조치와 별개로 이뤄지는 실태조사도 없었고 전담 부서도 없었다. 대책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지자체가 여전히 부끄러워하지도, 반성하지도 않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2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간병 살인'이 결국 지자체의 눈길과 손길이 닿지 않아 생긴 일임에도 말이다.

취재가 시작되자 대구시 희망복지과 위기가구지원팀은 신복지사각지대 지원사업 예산 중 3천만 원 정도를 가족돌봄청년들의 자조 모임 등 생계 급여 지원 이외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편성할 예정이라는 말을 전해 왔다. 명확한 실태조사를 따로 하지 않아 가족돌봄청년을 발굴조차 하지 못했는데 프로그램 운영만 진행하는 것은 반쪽짜리 복지다.

역시나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알게 된 가족돌봄청년들은 대구 시민임에도 대구시가 파악하고 있는 청년이 아니었다. 이러는 사이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대구시는 지금이라도 선제적인 발굴로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