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김남국의 지지리 궁상

입력 2023-05-11 20:26:06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카를 마르크스는 망명지 런던에서 죽을 때까지 곤궁하게 살았다. 부모와 처가로부터 상당한 재산을 상속받았고, 미국 신문인 뉴욕 데일리 트리뷴의 유럽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받는 원고료도 쏠쏠했으나 낭비벽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 공백을 메우려고 마르크스는 당시 영국 면직업계 거물로, 재력가였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끊임없이 돈을 보내 달라고 했다.

1918년 독일 혁명 당시 '스파르타쿠스단'이라는 투쟁 조직을 이끌고 봉기했다가 1919년 독일 우익 의용단에 살해된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도 빈한(貧寒)했다. 하지만 취향은 '부르주아적'이어서 귀한 손님을 초대하면 반드시 캐비어와 샴페인을 대접했고 옷도 단순하면서도 고급을 선호했다. 이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동반자이자 애인인 레오 요기헤스에게 툭하면 급전을 보내 달라고 했다.('세계사 편지', 임지현)

이들의 가난은 '낭비벽'이나 '부르주아적 취향'에 상당한 원인이 있지만 적어도 이들은 뒤로는 돈을 쌓아 놓고 가난한 척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산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좀 달랐다. 그의 조국 동독은 그에게 극장과 극단을 제공하는 등 갖은 특혜를 베풀었다. 이를 이용해 그는 많은 돈을 벌었다. 그 방법은 자기 작품을 동독 출판사가 아닌 서독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른 수익과 작품의 해외 공연에 따른 로열티는 모두 화폐 가치가 높은 경화(硬貨)인 서독 마르크화로 받았다. 그러면서 그는 '노동자'로 보이려고 노동자 옷차림을 했다.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것은 그 옷차림이 일류 재단사가 만든 것이란 사실이다. 이를 두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 비판이론가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그가) 손톱 밑에 때를 끼게 만드는 데 매일 몇 시간씩 허비한다"고 비판했다.('지식인의 두 얼굴', 폴 존슨) 영락없는 위선자라고 하겠다.

수십억 원대의 '코인 부자'로 드러난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난 행적이 이에 오버랩된다. 그는 "매일 라면만 먹는다" "편의점 아이스크림도 안 사먹었다"며 '거지 코스프레'를 했다. 코인 자산이 60억 원 이상이었던 작년에도 후원금을 모금하면서 '돈이 없어서 호텔 대신 모텔 생활을 한다'고 엄살을 떨기도 했다. 참으로 '지지리 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