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필자는 지난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태영호(61) 의원을 축하하면서 그에게 거는 기대를 글로 남긴 적이 있다. 주영 대사관 북한 공사였던 그는 탈북 4년 만에 서울 강남 부자 동네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의 남한 국회 입성은 북한 당국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탈북자 중 19대 조명철, 21대 지성호 의원도 있지만 모두 비례대표 출신 의원이다. 더욱이 그가 지난달 집권 여당 최고위원에 선출된 것은 그의 대단한 정치력의 결과이다. 그의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재빠른 인식과 분석력, 정치 메시지 전달력은 가히 이곳 기성 정치인을 능가할 정도다. 그러나 최근 그의 제주 4·3 사건에 이은 김구 선생 관련 발언은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정치 메시지는 여당 내에서도 상당한 비판이 일고 있다. 결국 집권 여당의 윤리위도 그의 처벌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다.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는 제주 4·3 항쟁을 '김일성의 지시'에 따른 행동이라고 규정하였다. 어수선한 해방 공간에서 발생한 제주의 민중 항쟁을 김일성의 지시에 따른 친북 좌파의 행동으로 매도해 버린 것이다. 4·3 항쟁의 유족들뿐만 아니라 관련 단체도 그의 주장에 대해 강력 항의하고 나섰다. 나의 대학 동기 중 부친이 제주 항쟁에서 희생되어 평생을 눈물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이 제주 항쟁은 주모자뿐 아니라 무수한 양민이 당시 경찰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처형되었다. 이 사건을 김일성의 지시에 따른 행위로 매도함은 유족들의 가슴에 다시금 대못을 박는 반역 행위일 뿐이다. 정부는 진상 조사를 통해 희생자의 억울함을 인정하여 4월 3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북에서 김일성에 충성하다 남에서 강경 보수 정치인으로 돌변한 그의 발언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4·3 유족들이 그의 다급한 사과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태 의원은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인 김구 선생마저 폄훼하는 발언을 하였다. 김구 선생은 상해 임정에서부터 중경 임정까지 26년간 임정을 지킨 위대한 지도자다. 그 험난한 과정에서 김구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김구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평양의 4김 회담에 참석하였다. 김일성의 반대로 회담은 결렬되었지만 그의 행적을 김일성의 '통일 전선 전략'에 이용되었다는 주장은 매우 적절치 못하다. 같은 당의 윤봉길 의사 손녀 윤주경 의원까지 반박하고 나섰다. 독립운동의 대부 김구 선생에게는 최고 훈장 격인 대한민국 건국장이 수여되었고, 그의 임정 활동은 대한민국 헌법 서문에도 반영되어 있다. 태 의원의 김구 선생에 대한 잘못된 주장은 가히 반헌법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최고위원 태영호 의원의 오도된 역사 인식은 정치 현실 인식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의 북핵에 대항한 남한의 독자적 핵 개발 주장은 현 정부의 방침에도 배치된다. 더불어민주당을 사이비 JMS 정당이라고 한 비판도 지나치다. 그는 민주당을 쓰레기(Junk), 돈(Money), 성(Sex) 비리 정당이라는 글을 페북에 올렸다. 그는 보좌관의 단순 실수 해프닝이라고 했지만 이 역시 매우 잘못된 표현이다. 최고위원으로서 야당을 사이비 종교 집단에 비유한 것은 한계를 한참 넘는 표현 방식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서의 그의 저급한 발언은 여야의 극한 대립을 조장시킬 뿐이다. 초선이면서 최고위원으로 등극한 그의 언행은 이제 정제되어야 한다.
태 의원은 누가 뭐래도 3만5천여 탈북자 가운데 성공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그는 남한 정치인이기에 앞서 제대로 된 우리의 현대사부터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그가 북에서 교육받은 대로 역사를 인식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탈북의 명분도 그 정당성도 사라진다. 북한의 금수저 출신으로 중국에 유학하고 영어와 중국어까지 구사하는 그는 정치 엘리트의 기본 자질을 잘 구비하고 있다. 두뇌 회전이 빠른 그가 보수층의 지지 획득을 위해 이번 발언을 했다면 이는 정치적 오판이다. 이 나라의 양심적인 합리적 보수층도 그의 주장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북한 출신 외교 전문가인 그는 북한 지도층의 의식 변화를 촉진하는 구상을 국정에 적극 반영하길 바란다. 어렵게 북한을 탈출하여 이곳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그의 노력은 탈북자의 귀감이며 통일 한국의 미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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