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냉전 시대에는 권력이 총구에서 나왔지만 경제 전쟁 시대에는 기업에서 나온다. 122명의 기업인을 동반한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와 미국에서의 환대에 답이 있다. 대통령의 방미 성과는 크다. 안보, 동맹, 핵 정보의 공유로 한미동맹에 한 획을 그었지만 외교는 쇼가 아니라 실리만이 진실이다.
이벤트에만 강하고 돈 챙기는 데 약하면 안 된다. 한국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칩스법)에서 두 번 뒤통수를 맞았다. 대통령 방미 중에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시원한 해결책을 기대했지만 공동성명에는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약속하였다는 표현에 그쳤다. 중간선거 이후 여소야대 국면에 처한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현실적으로 입법부가 만든 IRA법, 반도체과학법을 수정할 정치적 역량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중의 기술 전쟁이 반도체 전쟁으로 확산되면서 반도체는 경제 상품이 아닌 '전략물자'가 되었다. 지금 반도체는 국가 대항전이다.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으로 2027년까지 570억 달러(76조 원), 유럽이 2030년까지 430억 유로(64조 원), 중국이 2024년까지 3천429억 위안(66조 원)을 퍼넣는다. 반도체를 미국은 국가 '안보'로, 중국은 산업의 '심장'으로 격상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은 첨단 기술은 있지만 5㎚ 이하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공장이 없고, 중국은 공장은 있지만 기술이 없다. 한국은 기술도 공장도 모두 가지고 있어 미국의 안보, 중국의 심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방한 첫 일정은 휴전선 방문이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휴전선이 아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갔다. 미국의 옐런 재무부 장관은 상무부 장관도 아닌데 방한 마지막 일정이 LG그룹의 배터리 전시장 방문이었다. 기술 전쟁 시대에 미국이 보는 한국의 인계 철선은 38선이 아니라 반도체와 배터리다.
미국은 배터리를 못 만들고 중국은 반도체를 못 만든다. 지금 반도체와 배터리는 한국을 지키는 최종 병기 활이다. 한국은 미중의 기술 전쟁에 꽃놀이패를 쥐었지만, 세계 G1, G2가 모두 노리는 위험하고 귀중한 것을 쥔 한국은 역설적으로 가장 큰 위험에 놓여 있다.
고기는 미끼를 물 때 잡힌다. 세계 최강 미국이 보조금을 주고 세금을 깎아 주면서 한국 기업을 유치하는 것은 꿍꿍이가 있다. 반도체 정보 접근 허용, 이익 공유, 중국 투자 금지 조항이 있다. 보조금을 받아 공장을 짓고 나면 기술마저 털리는 기술 거지가 될 위험을 배제하지 못한다.
돈이 되면 보조금을 안 줘도 공장이 몰린다. 돈이 되면 미국의 인텔, 마이크론이 미국이 아니고 아시아에 공장을 지었을 리가 없다. 새는 모이에 목숨을 걸다 죽고 사람은 공돈에 목숨을 걸다 죽는다. 미국의 보조금 유혹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공장은 시장 가까운 데 짓는 것이지 보조금 많이 주는 곳에 짓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미국에 공장을 안 짓자니 후환이 두렵고 짓자니 손익과 기술 보호에 자신이 없다. 방법은 하나다. 한국이 잘하는 메모리반도체에서 시장을 석권해 미국과 중국이 한국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수가 최선이다. 그리고 한국의 반도체산업에 대해 불필요한 자기 비하를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챗GPT가 난리지만 엔비디아 칩셋도 한국이 만든 고대역메모리(HBM)가 없으면 꽝이다.
메모리반도체에서 미·중에 납품하지만 한국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슈퍼 을'이 되면 된다. 방법은 불황에 화끈하게 투자해 가장 약한 놈 하나를 쓰러트려 한국이 DRAM 시장의 95%를 장악하면 끝난다.
그러나 이는 미국 기업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에 담대한 전략과 파격적인 자금 지원, 인재 지원, 정책 지원이 있어야 한다. 3등을 죽이기 전에 우리 편 2등이 먼저 쓰러지면 안 된다. 부채가 많은 기업은 출자전환해 주고 투자금은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기존 대학들의 이해관계로 획기적 증원이 어려운 반도체 인재는 포스코, 한전공대처럼 삼성, 하이닉스가 반도체공대를 만들어 직접 인재를 길러 쓰게 하면 된다.
반도체 인재는 돈으로 길러야 한다. 5G 세계 1위인 중국의 화웨이는 첨단기술을 가진 박사 신입 사원에게 3억 원의 연봉을 걸고 중국은 물론이고 해외 천재들을 끌어모았다. 300조 원을 투자하는 한국의 반도체 프로젝트에서 10%인 30조 원을 인재에 투자하면 의대에 가는 이과생을 반도체로 발길을 돌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메모리 1등 전략은 1등 인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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