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한국정부학회장)
우리나라 법정(法定)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지만 연장근로 12시간이 허용된다. 그래서 최대 근로시간은 주 52시간이다. 정부가 이 제도를 고치려고 한다. 핵심은 연장근로를 산정하는 단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산정 단위를 주에서 월로 바꾸면 월 52시간(12시간×4.345주)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만약, 52시간을 한 주에 다 쓰면 근로시간은 104시간이 된다. 하지만 휴식 시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하루 근로시간은 11.5시간을 넘을 수 없다. 휴일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최대 근로시간은 주 69시간(11.5시간×6일)이다. 이것이 '주 69시간 근무제'이다. 물론, 한 주에 69시간을 일하면 나머지 3.345주는 평균 주 47시간 일한다.
'주 69시간 근무제'를 도입해도 근로시간이 늘지 않는다. 근로시간의 탄력성만 높아진다. 매주 52시간 이하로 일해야 하는 것은 경직적이다. 바쁠 때 일을 더 하고 한가할 때 쉰다는 발상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문제는 지금도 일을 많이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주 52시간을 5일로 나누면 하루 10.4시간이고, 7일로 나누면 하루 7.4시간이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7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부족한가? 그렇다면 근로자를 더 고용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 정서이다. MZ세대도 '주 69시간 근무제'에 반대한다. MZ세대는 영리하다. 이들은 '주 69시간 근무제'가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알았다. 정부가 순진했다. MZ세대는 기존 노동조합의 정치 투쟁에 반대했을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얼마나 일해야 하는가? 주 40시간 일하는 것은 지나친가, 부족한가? 아니면 적당한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2021년 현재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국민은 주 26시간 일한다. 주당(週當) 근로시간은 영국 29시간, 일본 31시간, 미국 34시간이다. OECD 평균이 33시간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근로시간은 주 37시간이다. 주 37시간은 일본의 1980년대 중반, 미국의 1950년대 중반과 비슷한 수준이다. 1961년 영국의 주당 근로시간은 34시간이었다.
그동안 근로시간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동물농장'(Animal Farm)의 저자인 오웰(Orwell)이 1937년 '위건 부두로 가는 길'(The Road to Wigan Pier)을 출간했다. 오웰은 당시 영국 광부들의 열악한 상황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고통스럽다. 한 구절을 인용한다. "15살 소년은 밤 근무조였다. 그는 밤 9시면 집을 나서 아침 8시에 돌아온 뒤 아침을 먹고는 곧장 잠자리에 들어 저녁 6시까지 잤다. 여가는 하루 4시간이었고, 씻고 먹고 입는 시간을 빼면 그보다 훨씬 적었다."
오웰이 현실을 고발할 때 케인스(Keynes)는 현실 너머 미래를 보았다. 1930년 케인스는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케인스는 실업을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보았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노동생산성이 현재의 4배가 되고, 자신의 손주가 살 2030년에는 생활수준이 8배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대단한 통찰(洞察)이다. 케인스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한발 더 나갔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일을 덜 해도 되니 2030년에는 사람들이 하루 3시간, 주 15시간 일할 것이다. '주 15시간 근무제'는 공상(空想)인가?
하늘을 나는 새는 씨 뿌리지 않고 거두지 않아도 살지만, 사람은 수고하고 얼굴에 땀이 흘러야 먹고산다. '노동'은 인간 원죄(原罪)에 대한 천형(天刑)인가? 2021년 현재 부유한 나라 국민들은 주 33시간 일한다. 2030년이 머지않았다. 케인스가 틀렸나? 모르겠다. 이 문제는 내 능력 밖에 있다. 김훈 선생의 글로 이 칼럼을 끝낸다.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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