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자동통화녹음기능

입력 2023-04-16 22:23:02 수정 2023-04-20 16:54:31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대표)

스마트폰에는 우리가 눈여겨 챙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유용한 기능이 꽤 있다. 그중 하나가 통화녹음 기능이다. 애플 아이폰은 개인정보보호라는 명분으로 통화녹음을 하지 못하도록 해놓았지만 삼성 스마트폰은 오래전부터 통화녹음 기능을 기본으로 장착, 사용자들을 배려해 왔다. 통화녹음 기능 때문에 아이폰에서 삼성폰으로 갈아타는 경우도 꽤 있다.

삼성폰의 통화녹음 기능도 과거보다 진일보해서 '자동'으로 설정하면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별도로 녹음을 누르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녹음된다. 그래서 평소에 이 통화녹음 기능이 필요없더라도 모든 통화가 저장돼 스마트폰 내의 저장소를 통화녹음으로 채울 수도 있다. 송영길 전 대표 시절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을 지낸 이정근 씨의 휴대전화 녹취록을 통해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드러난 것은 바로 이 스마트폰 자동통화녹음 기능으로 인한 것 같다.

검찰이 확보한 이 전 부총장 스마트폰에서 통화 녹취록이 쏟아져 나오자 수사팀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어떤 기종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삼성 폰일 가능성이 높다. 확보된 녹취록이 3만여 개에 이른다는 보도를 감안하면 최소한 1대 이상의 휴대폰으로 '자동통화녹음 기능'을 사용했을 개연성이 높다. 스마트폰 설정 기능을 누르면 수신 차단 기능 등을 설정하는 항목 외에 통화자동녹음 여부도 설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자동통화녹음 기능을 설정해 놓아서 저장된 통화 기록을 삭제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바꾸면서 방치한 결과가 이번에 검찰에 포착된 셈이다.

MBC PD수첩 취재리서처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카피라이터로 발탁돼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이색 경력의 이 전 부총장이 무슨 의도로 통화 내용을 모두 녹음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정치권 생리상 통화 녹취는 특별한 꿍꿍이속 등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존재감이 미약한 이 전 부총장이 20대, 21대 총선에 이어 2022년 3월 재보선 등 세 차례 선거는 물론, 2018년 서울 서초구청장 후보로도 공천을 받아 출마한 것은 미스터리로 꼽힌다.

이 전 부총장이 스마트폰 통화녹음 기능의 수혜자인지 피해자인지는 단정할 수는 없다. '돈 봉투'가 두려운 정치인들이 자신의 휴대폰 통화녹음 설정을 확인해 봐야 할 타이밍이다.

didero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