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월화드라마 ‘오아시스’, KBS 드라마의 갈증 풀어줄까
1980년대 격동기의 한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청춘들의 엇갈린 사랑과 우정. KBS 월화드라마 '오아시스'는 어딘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시대극이다. 조금은 익숙한 옛날 드라마 같지만, 이상하게도 새삼스러운 정감을 준다.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모래시계'와 닮은 듯 다른 시대극
1980년도 격동기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두 남자와 한 여자.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 중 한 명은 검사이고 다른 한 명은 조직의 보스다. KBS 월화드라마 '오아시스'의 시대와 인물 구성을 보면 떠오르는 시대극이 있을 게다. 바로 1995년 퇴근길 거리를 텅 비게 만들어 '귀가시계'라고도 불렸던 '모래시계'다. '모래시계'가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을 겪으며 저마다 다른 길로 걸어가게 된 태수(최민수)와 우석(박상원)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섰던 혜린(고현정)의 사랑과 우정을 그렸다면, '오아시스'는 역시 80년대 격동기에 검사가 된 철웅(추영우)과 조직 보스가 된 두학(장동윤) 그리고 그들이 동시에 사랑한 정신(설인아)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이렇게 보면 '모래시계'와 '오아시스'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거기에는 확연히 다른 관점이 들어있다.
결국 시대극이란 그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기의 대중들이 갖고 있는 갈증을 투영하기 마련이다. '모래시계'가 방영된 95년은 93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이른바 문민정부가 시작되던 시기다. 80년 광주를 거쳐 대통령이 된 전두환과 그 후의 노태우까지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가려져 온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에 대한 갈증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모래시계'의 김종학 감독은 그래서 이 드라마 안에 당시까지만 해도 공개되지 않았던 80년 광주에서 벌어졌던 신군부의 참혹한 진상들을 자료화면 그대로 공개하기도 했다. '모래시계'가 그저 시대를 담은 드라마의 차원을 넘어 '귀가시계'가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또다시 80년대를 다루는 '오아시스'라는 시대극은 현재의 어떤 갈증들을 이 드라마에 투영시켰을까. 그건 바로 현 시대의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수저계급'의 현실이다. 어떤 부모에서 태어나는가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현실. 그래서 노력에 의한 성공이나 성장에 좌절을 느끼는 현실이 그것이다.
70년대 말,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철웅과 그 집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두학은 형제 같은 사이로 같은 학교를 다닌다. 하지만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두학은 아버지 중호(김명수)에 의해 모든 면에서 철웅에게 양보하는 삶을 살아간다. 공부를 잘해 철웅을 성적에서 앞지르자 중호는 두학을 농고로 전학 보내고, 심지어 철웅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을 대신 뒤집어쓰게 해 자기 아들을 감옥까지 보낸다. 결국 거기서 이 두 사람의 길이 갈라진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두학은 할 수 있는 게 깡패 짓밖에 없어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들고, 철웅은 검사가 된다.
두 사람은 마치 현재의 청춘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태생에 따라 달라진 삶을 보여주지만, 여기에는 현재와는 다른 지점들이 판타지를 자극한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 속에 들어갔던 두학도 나름의 노력으로 기회를 잡아 성장해가는 과정 또한 담아내고,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철웅은 정반대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마주하게 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철웅은 중호의 친 아들로 두학의 동생이다. 아이가 없는 지주의 집안에서 데려다 키운 것. 결국 태생에 의해 좌우되는 미래라는 수저계급의 허구를 이 출생의 비밀은 여지없이 깨버린다.
◆옛 드라마 같은 시대극에 드리워진 현재의 감성
앞서 언급했듯, '오아시스'는 그 배경과 인물구성이 '모래시계'를 닮았지만, 그 안에는 더 다양한 옛 시대극의 잔상들이 들어 있다. 즉 이두학과 그 조직들이 이권을 두고 벌이는 두뇌싸움이나 액션에서는 '야인시대'(2002)나 '왕초'(1999) 같은 작품이 떠오르고, 정신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극장을 되찾고 전국의 극장들을 장악해가는 이야기에서는 '빛과 그림자'(2011) 같은 작품이 떠오른다. 세트로 재연해 놓은 배경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어딘지 옛 드라마 같은 느낌으로 연출되고, 서사 구조 역시 세련됐다기보다는 과거의 시대극을 보는 듯한 다소 허술해 보이지만 어딘가 정감이 가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사실 이런 대본과 연출은 몇 년 전에 나왔다면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을 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불고 있는 뉴트로 경향은 '오아시스'의 이러한 옛 드라마가 같은 감성을 새삼스러운 정감으로 바꿔주는 힘을 발휘한다. 어딘지 퇴색된 느낌을 재연된 연출들에서 '빈티지' 감성이 느껴지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 같은 너무나 쉽게 찍고 지우고 보정할 수 있는 기능들이 사진 본연의 가치를 떨어뜨려 오히려 필름 카메라 같은 아날로그적 사진을 더 가치있게 느껴지게 한 것처럼, 시간의 흔적이 더해진 퇴색된 색깔들은 촌스럽고 낡은 것이라기보다는 시간의 가치가 더해진 것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여기에 '오아시스'라는 시대극은 최근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는 이른바 '회귀물'의 감성 또한 담고 있다. 최근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회귀물을 보면 과거로 돌아간 인물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알고 있어 그걸 기회삼아 성장하는 판타지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오아시스' 같은 시대극은 본질적으로 회귀물의 이러한 판타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극중 주인공들은 향후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80년대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를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그 시대 변화를 예측하며 주인공들이 향후 어떤 기회를 잡을 것인지 또 어떤 실패를 맞볼 것인지를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이 시대극이 시청자들에게 부여하는 회귀물 같은 판타지의 실체다. 이 관점에서 '오아시스'에 등장하는 두학과 철웅이 90년대에 있을 '범죄와의 전쟁' 같은 상황 속에서 조직 보스와 검사로서 어떻게 마주할까 같은 기대감을 갖게 되고, 전국망의 극장을 접수하던 정신이 소극장 시대를 거쳐 90년대말 멀티플렉스가 생겨나던 그 시대와 어떻게 마주할 지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난다. 물론 드라마가 그걸 그려낼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기대감들이 드라마를 보게만드는 중요한 동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오아시스'가 새삼스럽게 연 시대극의 가능성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네 드라마에서 시대극은 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는 제작비 문제도 그렇지만, 시대극이 갖는 연출이나 서사의 촌스러움이 과연 글로벌 시대를 맞이한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싶은 이유도 있었을 게다. '오아시스'가 다른 플랫폼도 아닌 공영방송 KBS에서 방영된 건 그래서 이해되는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시청층이 존재하는 채널이라는 점이 시대극에 대한 시도를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역시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했던 '오월의 청춘'(2021) 같은 시대를 품은 멜로드라마가 KBS에서 방영됐던 것도 그런 점에서 보면 우연은 아니라고 보인다.
하지만 '오아시스'를 보면 시대극이 현재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다. AI가 이제 익숙해질 정도로 우리는 디지털 시대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그럴수록 뉴트로 같은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 한다. 게다가 이제 드라마틱한 성장드라마가 현실에서 쓰이지 않는 현재에, 그걸 가능하게 했던 옛 시대라는 배경은 매력적인 서사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시대극은 그만큼 가능성이 충분한 장르가 되고 있다. 물론 현재의 대중들이 느끼는 갈증들을 풀어내주는 방식으로 시대가 재해석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댓글 많은 뉴스
이낙연 "민주당, 아무리 봐도 비정상…당대표 바꿔도 여러번 바꿨을 것"
'국민 2만명 모금 제작' 박정희 동상…경북도청 천년숲광장서 제막
위증 인정되나 위증교사는 인정 안 된다?…법조계 "2심 판단 받아봐야"
박지원 "특검은 '최고 통치권자' 김건희 여사가 결심해야 결정"
일반의로 돌아오는 사직 전공의들…의료 정상화 신호 vs 기형적 구조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