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정치 사라진 여의도

입력 2023-04-04 17:21:52 수정 2023-04-04 19:12:10

송신용 서울지사장
송신용 서울지사장

여의도 하늘의 먹구름이 짙다. 폭우를 예고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 절차와 숙의(熟議)로 국익과 민생을 챙겨야 하건만 사사건건 정쟁과 대결, 내로남불로 역주행 중이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정치 본연의 역할이 사라진 지 오래다.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국민은 안중에 없다는 식이다. 먹고살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건만 여야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국제 질서와 안보 위기 아래서 주권과 국익을 지켜야 할 텐데 눈을 질끈 감고 있다.

169석의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관련 단체 간 의견 충돌이 극심한 간호법 제정안 등의 본회의 부의안은 민주당 주도로 이미 통과됐다. 앞서 여야가 날카롭게 부딪쳤던 방송법 개정안도 민주당이 본회의 직회부 수순을 밟겠다고 한다. 이러다가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은 아예 법제사법위원회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올라갈 판이다. 시행에 따른 실효성이 의문시되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거야 뜻대로 통과된 뒤 어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여의도 정치의 새 뇌관이 됐다.

외교도 정쟁화할 태세다. 민주당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저지 대응단' 등 소속 의원 4명은 6~8일 일본 후쿠시마 현지 방문을 추진 중이다. 대통령실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다고 거듭 밝혔음에도 두 정상 간 관련 논의가 있었다는 일본 언론 보도를 기정사실화하며 직접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일한의원연맹 측은 "민주당 의원들과 만날 생각이 없다"며 "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둘러싼 불똥이 당 지도부로 튄 현실을 보면 국민의힘도 책임 있는 여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전 목사와의 관계 단절' 취지의 요구를 해온 홍준표 대구시장이 김기현 대표의 리더십을 비판하자 김 대표가 "지방자치단체 행정을 맡은 사람은 그에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역공을 폈다. 홍 시장은 "그(전 목사) 밑에서 잘해 보세요"라고 맞받아쳤다. 지지율 정체를 타개하겠다면 당 정체성부터 정립해 국민에게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정치가 실종된 사이 나라 안팎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국가결산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가부채(광의)가 2천326조 원을 기록, 사상 최고치를 다시 한번 경신했다. 1년 전보다 6.0%인 130조9천억 원(6.0%) 늘어난 규모다. 2년 연속 사상 최고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9.6%로 1년 전 46.9%보다 2.7%포인트 높아졌다. 1인당 국가채무는 2천68만 원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2천만 원을 넘어섰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나 안보 위기 극복은 후순위로 밀려났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 운동,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5월 23일),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보면 정치 복원 기대감은 가물가물해진다. 앞서 여야는 제주 4·3 추념식에서 과거사 인식을 놓고 한판 붙었다. 서해수호의 날을 놓고도 입장 차가 확연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갈라치기 정치와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릴 건 보나 마나다. "국회 의사봉을 두드릴 때 첫 번째는 야당을 보고, 두 번째는 여당을 보고, 세 번째는 국민을 본다"고 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 같은 큰 정치인의 부재가 아쉬운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