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Pacta sunt servanda(팍타 순트 세르반다)

입력 2023-04-05 14:57:22 수정 2023-04-06 07:44:37

박상전 경제부장
박상전 경제부장

'상화로 입체화 공사의 지역 업체 하청 비율'을 둘러싼 시공사-대구시 간 갈등이 하루 만에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게 됐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여론의 지적에 대구시의 발 빠른 대처가 이뤄낸 쾌거로 보인다.

시공사인 코오롱글로벌㈜의 양보도 인정할 만하다. 안전 시공을 위해선 관련 공사 경험이 필수인데, 지역에선 이 같은 업체가 부족해 복잡한 공정을 소화할 수 있는 외지 업체 입찰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던 입장을 마냥 비판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한 차례 홍역을 앓았으나 양측이 원점으로 돌아와 '하청 비율'을 그대로 유지키로 재합의한 점은 많은 부분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우선 지방균형발전 정신에 부합했다는 점이다. 김광림 전 국회의원은 현역 시절 경북 북부 지역의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문제를 지적하면서 "지도를 펴보면 경북 북부의 도로망만 백지 상태다. 여기엔 빈약한 경제성 논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소위 '오지'로 불리는 경북 북부 산간 지역은 거주·유동 인구가 적어 도로를 건설하기 위한 비용편익비(B/C)가 나오지 않는다. B/C가 나오지 않으니 도로가 들어서질 않고, 도로가 없으니 왕래가 뜸하고, 왕래가 없으니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는 '오지'로 방치됐다. '빈익빈 부익부' 같은 일종의 '빈곤의 악순환' 논리가 지배하고 있던 것이다.

상화로 입체화 공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역 업체의 관련 공사 경험 유무를 주요 기준으로 한다면 경험이 부재한 지역 업체는 평생 이 같은 대형 공사에 원천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번 기회에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아 지역 업체의 체력을 길러 주고 함양을 배가시키는 게 균형발전에 일조하는 일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번 합의는 또 인구 소멸 지역 지원 정책에 일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서울의 합계 출산율이 0.59명으로 전국 최저를 기록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집값이다. 평생을 벌어도 제 누울 자리 한 곳 장만하지 못하니 결혼을 꺼리고 출산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에서 발주한 공사마저 중앙으로 쏠리는 현상이 반복될 경우 지역 업체는 대규모 구조조정 내지는 도산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지역 업체에서 이탈한 인력은 수도권으로 빨려 들게 되고, 이 같은 중앙집중화 현상은 과밀화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지방의 인구 소멸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될 공산이 크다.

이번 해프닝이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점은 원칙이 지켜졌다는 점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나온 중세법의 중요한 원리 중 한 명제인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라는 게 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

국제법상 국가 간의 약속은 물론이고, 사법체계상 개인 간 약속도 계약에 근거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위반 시 수반되는 '혼돈'은 계약 당사자 간 첨예한 갈등으로 돌아온다. '혼돈'의 극단으로는 비참한 전쟁이나 대량의 범법자 발생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번에 잠시 겪었던 혼란이 그저 해프닝으로만 끝나서 한숨 돌리게 되는 대목이다.

다만 지역도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관련 업계는 이번 기회를 십분 활용해 체력을 키우는 한편 기술 개발에 열을 올려야 한다. 대구시도 다시는 이 같은 혼선이 반복되지 않도록 원청자로서 관리 감독 활동을 게을리해선 안 될 일이다.